숫자가 포함된 그룹명이 늘어난다는 면에서 수학과 대중문화는 미약하나마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수와 수학적 개념은 시나 소설 같은 순수문학에 반영되기도 한다. 수학과 문학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으로 감성의 정수를 담은 문학 작품에 무미건조한 수학이 등장한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천재 시인 이상의 실험적인 시에서 기수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오감도’의 첫 번째 시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는 제1의 아해부터 제13의 아해까지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시를 분석해 보면 이상이 십진법을 염두에 뒀음을 알 수 있다. ‘제1의아해가 무섭다고그리오’ 다음에는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라고 되어 있다. 주격조사가 ‘가’에서 ‘도’로 바뀐 것이다. 이는 제10의 아해까지 계속되다가 제11의 아해에서는 주격조사 ‘가’가 사용되며 제12와 제13의 아해까지는 다시 주격조사 ‘도’가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제10과 제11 아해의 행 사이에는 한 줄의 빈칸을 둔다. 즉 이상은 제1부터 제13까지를 단순 반복으로 보지 않고 10을 기준으로 일단락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위상수학이라는 분야의 연구를 촉발시킨 순수한 수학적인 개념이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도 활용 가치가 높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중에는 한 번 꼬인 뫼비우스 띠 모양이 많다. 이유는 벨트의 양쪽 면이 골고루 기계에 닿게 되므로 균일하게 마모돼 벨트의 수명이 길어지고 벨트가 잘 벗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열한 번째 소설은 ‘클라인 씨의 병’이다. 독일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이 고안한 클라인 병은 위와 아래가 뚫려 있는 원기둥에서 옆면을 뚫고 원기둥의 위와 아래를 연결해서 만든다.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고, 여기서는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만 따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죠.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
이런 소설 대목에도 나오듯이 클라인 병에서는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없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관점을 자유롭게 전환하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세계를 넘나드는데 클라인의 병은 이에 대한 적절한 상징물이 된다. 문학적 상상력을 수학의 개념을 통해 표출한 작가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