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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맛!]사랑으로 빚은 맛, 꿈으로 채운 맛… ‘만두’

입력 | 2010-02-19 03:00:00


‘우리가 부실하게 엮은 가정을 위해서/박복에 튼튼하게 박은 자식들을 위해서/난곡동 개천에 흐르는 똥물로 만나/번듯한 선진조국을 가늠하며/복개공사를 한다/우리야 속으로 감추어야 할 쓰레기 같은/인생들이지만/언제인가 만두 속처럼 터져 나올/희망 때문에/거푸집을 만들고 거기에 우리의 생활을 부어 넣는다’ <서수찬의 ‘복개공사’에서>



겉 먹자는 송편이요, 속 먹자는 만두라. 떡 먹자는 송편이요, 소 먹자는 만두라. 만두는 만두소 먹는 맛으로 먹는다. 만두소는 알이 꽉 차야 제 맛이 난다. 다져진 속살이라야 푸석하지 않다. 숙주 배추 등 나물을 넣을 때는 물기를 손으로 꽉 짜서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맹물 맛이 난다. 두부조차 물기를 빼고 넣지 않으면 맛이 달아난다. 만두피는 얇아야 한다.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봄눈 녹듯 스르르 사라져야 한다.

만두(饅頭)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사람들이 즐겨먹는다. 한자로는 다 똑같다. 일본에서는 ‘만주’라고 읽고, 중국에서는 ‘만터우’라고 할 뿐이다. 중국 만터우는 밀가루 반죽에 속을 넣지 않고 찐, 일종의 찐빵 같은 것이다. 한국 만두와 같이 밀가루 피에 고기나 채소를 넣고 찐 것은 ‘자오쯔(餃子·교자)’나 ‘바오쯔(包子·포자)’라고 한다. 대표적인 중국 음식 딤섬도 만두의 일종이다.

만두는 밀가루 음식 ‘만(饅)’자에 머리 ‘두(頭)’자를 쓴다. ‘밀가루로 만든 사람 머리’라는 뜻이다. 중국 삼국지의 제갈공명(181∼234) 설화에서 비롯된 탓이다. 제갈공명이 여수(濾水)라는 강을 건너려는데 물살이 너무 세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그때 밀가루로 사람 머리 모양을 빚어, 강물 속에 던져 넣으며 강 수호신을 달랬다. 그러자 금세 바람이 멎고 물살도 가라앉았다. 당시 제갈공명이 만든 제물을 ‘만수(饅首)’라고 불렀는데 후에 만두가 됐다.

일본에서도 만두와 교자는 다르다. 교자는 반달 모양이고, 만두는 보자기를 동그랗게 묶어놓은 것 같다. 일본인들은 구운 ‘야키 교자’를 가장 많이 찾는다. 삶은 ‘스이 교자’보다 인기가 좋다. 일본에서 동그란 만두는 모두 쪄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한국 만두는 중부 이북에서 주로 먹었다. 설날에도 떡국보다 만둣국을 먹을 정도였다. 평양만두가 알이 가장 크고, 개성만두가 그 다음, 서울만두가 가장 작다. 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에 보면 ‘쌍화점에 쌍화를 사러 갔더니 쌍화점주인 회회아비가 내 손을 잡더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쌍화는 만두를, 회회아비는 아라비아상인을 뜻한다. 수도 개경에 아라비아상인이 만두가게를 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만두를 ‘상화(霜花, 床花)’라고 하다가, 후기에 점점 ‘만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메밀가루를 눅직하게 반죽하여 새알만큼씩 떼어 빚는다. 만두소 장만은 무를 아주 무르게 삶아 덩어리 없이 으깨고 꿩의 연한 살을 다져 간장 기름에 볶아 백자 후추 천초가루로 양념하여 볶는다. 삶을 때 새옹에도 착착 넣어 한 사람씩 먹을 만큼 삶아 초간장에 생강즙을 하여 먹도록 한다.’ <1670년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서>

조선 인조 임금(재위 1623∼1649)은 전복 넣은 만두를 좋아했다. 그의 생일이 되면 왕자들 부부는 새벽부터 앞 다퉈 전복만두를 빚어 올리며 문안했다. 첫째 소현세자, 둘째 봉림대군, 셋째 인평대군 등 예외가 없었다. 그만큼 당시 만두는 궁중상차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였다. 어만두 동아만두 생치(꿩)만두 생합만두 육만두 등이 바로 그 면면이다.

어만두는 생선살을 얇게 포로 떠서 만두피로 사용한 것이다. 동아만두는 큰 오이 같은 동아 채소를 만두피로 쓴 것인데, 속이 비칠 듯 말 듯 얇은 동아피와 동아의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개성만두 편수는 밀가루 만두피에 오이와 고기를 넣은 것이다. 밑바닥은 사각형이지만 위로는 삼각뿔이나 피라미드처럼 생겼다. 여름에 많이 만들어 먹었던 호박편수도 있다. 애호박의 상큼하고 들큰한 맛이 시원하고 기가 막히다.

요즘 만두집은 알이 큰 평양식이 대부분이다. 밀가루 반죽에 식용유를 약간 넣어주거나 달걀 흰자와 찹쌀을 섞기도 한다. 서울 무교동의 리북손만두(02-776-7350), 세종로 대우빌딩 지하 1층 평안도만두집(02-723-6592), 압구정동 맥도날드 1호점 옆골목 만두집(02-544-3710), 강남구 신사동 만둣국전문 목로(02-548-7500) 등이 그렇다.

개성식 만두집도 있다.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정문 앞 궁(02-733-9240)이다. 만두피가 얇아 속이 훤히 비친다. 개성식 조랭이떡국과 같이 먹는다. 서울식 만두는 자하문 터널 위 자하손만두(02-379-2648)가 이름났다. 조선간장을 쓰며 3대째 만두를 빚고 있다. 형형색색의 컬러만두도 있다. 대구 납작만두도 빼놓을 순 없다. 납작만두는 반달 모양으로 납작하게 빚어 한 번 삶은 뒤, 이를 다시 구운 것이다. 소에 당면과 파 부추 등을 넣는다. 고춧가루를 뿌리고 간장을 쳐서 먹으면 맛이 독특하다. 미성당(053-255-0742)

만두는 무궁무진 많다. 속에 뭘 넣느냐에 따라 야채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밤만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익히는 방식에 따라 물만두 찐만두 군만두가 있다. 만두피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어만두 감자만두 호밀만두 동아만두 등으로 나뉜다.

중국 사람들은 춘제(春節·설날)에 자오쯔, 즉 교자를 먹는다. 자오쯔 형태가 중국돈 원보(元寶)와 비슷해 그걸 먹으면 ‘돈벼락’을 맞는다고 생각한다. 꿀과 설탕을 넣고 ‘새해 가정이 달콤하기’를 빌기도 한다. 만두 속에 대추를 넣어 아들 낳기를 바라는 경우도 흔하다.

결국 만두소가 문제이다. 사랑을 넣느냐, 돈을 넣느냐, 꿈을 넣느냐! 만두는 생긴 대로 빚어진다. 속마음대로 빚어진다. 마음이 둥근 사람은 둥글게 빚는다. 각진 사람은 각지게 빚는다. 울퉁불퉁 빚는 사람은 마음도 덜컹거린다.

만두는 배 터진 것조차 맛있다. ‘만두 배 터지는 소리’는 희망 터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만두부인 속 터져도 한바탕 웃으면 그만이다. 눈물도 서러움도 한 송이 꽃이 된다.

‘터지고 말았다./터지고 만 것이다./터져서 사그리 없애기 힘들다./그렇게 터져 버렸다.//내 마음 갈기갈기 찢겨버린 눈물.’ <윤재희의 ‘만두’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