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초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생명
“어머나!” “툭 터진 꽃망울이 제 가슴에 와서 톡 터지는 것 같았어요.” ‘화초 마니아’로 불리는 이정화 대표(47·여). 인테리어업체 ‘씨에스타’를 운영하며 업계에 그린 인테리어 바람을 몰고 온 그는 화초와 함께 40년 넘게 지내왔지만 아직도 새싹이 올라올 때마다 마음에서 울리는 감동을 받는단다.
“스노드롭(snowdrop)이라는 꽃이 있어요. 눈을 뚫고 가장 먼저 꽃을 피워요. 알뿌리 식물로 수선화과죠.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수선화 알뿌리를 심어놓고는 잊고 지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노란 꽃을 피운 거예요. 제 혼자 어떻게 자랐는지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한동안 눈을 못 뗐어요.” 이 대표에게 화초는 생명 그 자체다.
‘산타벨라처럼 쉽게 화초 키우기’란 책으로 유명한 저자 성금미 씨의 실내 정원. 성씨는 “베란다에 꾸민정원에서 화초와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성금미 씨
글=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디자인=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흠뻑 젖을 만큼…
사랑 주는 것도 그렇죠”
소통
“예서제서 흙을 뚫고 솟아오르는 여리고 예쁜 싹들이 보였고, 그것들이 이 세상 빛을 보길 참 잘했다고 저희끼리 좋아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면서…(중략) 예기치 않은 기쁨이요 위안이었다.”(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중에서)
봄 향기 가득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화훼시장. 18일 찾은 화훼시장은 집안에 봄기운을 들이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서영수 전문기자
인터넷 카페 ‘식물과 사람들’의 운영자 원종희 씨(51·여)도 화초를 ‘예쁜 아가들’이라고 부른다.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 문을 연 그의 인터넷 카페는 현재 회원 1만여 명을 육박하고, “남편 따라 취미로 시작한” 화초 키우기는 660㎡(200평)이 넘는 하우스로 자리를 넓혔다. “원래 다혈질의 성격인데 예쁜 아가들을 보며 ‘사랑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여간해서는 화나는 일도, 억울한 일도 쉽게 잊어버려요.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라는 원 씨는 요즘 하우스를 방문하는 손님들과 더 큰 행복을 나누고 있다. “비가 오면 우울하다고 하우스를 찾는 손님도 있고, 자식들 다 키워놓고 나니 무료해졌다며 찾아오는 단골도 있죠. 돌아갈 때는 다들 미소를 찾아 가세요.”
관계
강원 춘천시의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성금미 교사(43·여)는 온라인에서 유명한 화초 전문가다. 스타 블로거인 데다 ‘산타벨라처럼 쉽게 화초 키우기’란 책도 냈다. 성 교사가 화초와 인연을 맺은 건 15년 전 제자가 선물한 로즈마리 때문이었다. “반복되는 생활에 권태로움을 느끼던 때였는데 허브가 매력적이어서 푹 빠져들었어요. 닥치는 대로 사들였죠. 그런데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애들이 시들한 거예요.” 그러다 무릎을 탁 쳤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이게 바로 지중해성 기후야”라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다 허브가 지중해성 기후 식물이라는 게 퍼뜩 떠오른 것이다. “당장 부모님 댁 마당에 허브를 옮겨 심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애들이 싱싱해졌어요. 실내에서 기를 식물이 아니었던 거죠.” 그때부터 성 교사의 관심은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관엽식물로 옮겨 갔다. 현재 그의 집에는 수백 그루의 화초가 함께 산다.
성 교사가 10여 년간 화초를 키우며 터득한 노하우는 바로 물이다. 물주기만 잘하면 90%는 성공이란다. 물을 자주 주란 얘기가 아니다. “꽃집에서 시키는 대로 이틀에 한 번씩,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줬는데도 화초가 시들어 죽었다고 얘기해요. 그래서 화초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죠. 그런데 대부분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탈이 난 경우가 많아요.” 그의 설명은 이렇다. 계절마다 온도가 다르고, 햇빛과 바람의 양도 다른데 정해진 날짜마다 물을 주는 건, 마치 소화도 안 됐는데 먹을 것을 우겨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간과 관계없이 화분의 흙이 말랐을 때 물을 줘야 한다.
치유
그래서인지 요즘 푸른 생명을 매개로 한 ‘원예치료’가 각광을 받고 있다. 심리적 안정감, 자존감, 희망, 의지, 감수성 등을 높이는 데 원예가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마음속에 잠재돼 있던 의지와 삶에 대한 긍정의 힘을 회복하는 데 땅과 식물이 제일의 동지였다.’ 남편을 잃고 제주도 한라산 자락에서 ‘청재설헌(淸齋설軒)’이란 농장을 꾸리고 있는 김주덕 씨(55·여)는 자신의 책 ‘힐링가든’에서 이렇게 썼다. 땅을 일구고 생명과 조우하며 상처를 치유한다고 했다.
충북 충주시에 사는 송동근 씨(54)도 집 안에서 화초를 키우며 마음의 상처를 씻어냈다. 어릴 때 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송 씨는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5년 전 하던 사업을 접었다. 당시 그의 눈에 처가에 있던 소철 두 그루가 밟혔다. “화초를 좋아하던 장인어른이 몸져눕게 되면서 그 많던 화초가 하나둘씩 죽어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소철 두 그루가 힘겹게 살아있는 거예요.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가져와 키우게 됐죠.” 화초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인터넷 카페를 뒤져가며 정성을 쏟았다. 지금 송 씨의 집에는 300그루가 넘는 화초가 자라고 있다. 그는 “화초들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할 정도로 활기를 되찾았다. 그의 아내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적당히 하라며 걱정하지만 송 씨는 열성을 다한다. 인터넷 카페 ‘식물과 사람들’의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이제는 초보자들에게 도움까지 주고 있다. “몸이 불편하니까 결혼도 쉽지 않았고, 직장일도 사업도 어렵게 꾸렸죠. 그러면서 우울하게 지낸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식물을 기르는 행복감에 충만해 있어요.” 송 씨는 푸른 생명을 예찬했다.
▼잎 색 진한 것이 건강…
처음 키울 땐 다육식물이 좋아▼
―튼튼한 화초는 어떻게 고르나요.
▽성=초보자라면 작은 꽃집보다는 비교해 고를 수 있는 화훼시장을 가세요. 잎 색깔이 진하고 줄기가 굵고 튼튼한 화초가 건강한 녀석입니다. 흙 위에 작은 벌레가 기어 다니지는 않는지, 잎 뒷면에 벌레가 붙어있지 않은지도 꼼꼼히 살피세요. 꽃이 피는 식물은 봉오리진 것보다 꽃이 두세 송이 피어있는 것이 좋습니다.
―물 주기가 가장 중요하다면서요.
▽성=물만 잘 줘도 성공입니다. 무조건 흙이 말랐을 때 뿌리까지 젖도록 흠뻑 주세요. 물을 찔금찔금 주면 화초는 금방 죽습니다. 작은 화분은 겉흙이 뽀송하게 말랐을 때 주면됩니다. 큰 화분은 속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때 나무젓가락을 깊숙이 넣었다가 꺼내 보면 되는데, 젓가락에 흙가루가 많이 붙어 있으면 속흙이 아직 젖어 있다는 얘기니 축축한 느낌이 없을 때 물을 주세요.
―초보자가 쉽게 키울 만한 식물은 없을까요.
▽이=요즘 인기가 높은 다육(多肉)식물을 키워보세요. 잎이나 줄기에 수분이 많아 손이 많이 가지 않습니다. ‘초록장미(칠복신)’나 ‘청옥’ 등이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다육식물은 특히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해서 잠잘 때 옆에 두면 숙면을 돕지요. 낮에는 꼭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세요.
―인테리어 효과도 높이고 싶은데요.
▽이=폴리시어스, 알로카시아 등은 키우기도 쉽고 모던한 인테리어에도 잘 어울립니다. 벵갈고무나무 같은 종류는 이국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고요. 저는 화분을 일렬로 세워두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제법 큰 녀석들은 하나씩 군데군데 배치하는 게 좋고, 크고 작은 화분을 한쪽에 둥글게 모아두는 것도 좋지요.
―키우던 화초들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성=봄맞이를 준비할 시기입니다. 겨울 추위에 냉해를 입은 화초라면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주세요. 잎이 말랐거나 반점이 생긴 것, 줄기가 물컹거리는 것 등은 회복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너무 웃자란 줄기도 가위로 잘라주세요. 봄의 기운을 받으면 더 왕성하게 자랍니다. 뿌리가 화분에 꽉 찼다면 분갈이를 해주세요. 단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꽃이 진 이후에 분갈이를 해야 합니다. 영양제는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3∼5월, 9∼11월 사이에만 주는 게 안전합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