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서 20세기 베버가 사용하기까지2000년에 걸친 단어 카리스마의 역사 추적
◇카리스마의 역사/존 포츠 지음·이현주 옮김/544쪽·2만5000원·더숲
“아테네는 그에게 초자연적인 카리스마를 부여했다. 그러자 그가 다가오면 모든 사람들은 탄복하며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중에서)
사도 바울은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리스’에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바울은 ‘카리스’에 행위의 결과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접미사 ‘마(ma)’를 붙인 단어 ‘카리스마’를 이 편지에서 16차례 사용한다. 신의 카리스(은총)의 직접적인 결과물, 즉 신의 은사를 뜻하는 단어다. 이방인들에게 익숙한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카리스’를 끌어들인 것이다. 바울은 은사를 통해 공동체에 봉사하고 결속하라고 주문했다. 저자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읽는 사람들의 사회적 환경에 맞게 카리스라는 종교적 개념을 재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세로 접어들면서 즉흥적 영감에 의한 설교보다는 성서가, 예언자보다는 주교가 교회의 중심이 됐다. 영적 능력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카리스마라는 단어도 잊혀져 갔다.
이제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며 ‘계발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취급받는다. 베버가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종교적 색채가 남아 있었지만 현대로 접어들며 이 같은 색채는 대부분 제거됐다. 합리성과 서민적 면모가 정치인의 중요한 자산이 되면서 ‘카리스마적 지배자’는 현대 정치에서 찾기 힘든 것이 됐다.
그러나 저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서 여전히 베버가 제시한 카리스마의 개념이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한다. 존 F 케네디를 언급하고, 열정적인 연설과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이 모두 오바마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에 대한 열광적 지지는 종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