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 정착되면 업계 뭐가 달라지나

○ 연결재무제표 의무화
본사-계열사들 실적 합산… 글로벌 대기업 부채율 하락
○ 상환우선株는 부채로
기존에는 자본으로 분류… 발행 많이한 기업 초비상
국제회계기준(IFRS)의 도입은 업계에서 ‘회계 빅뱅’으로까지 불린다. 새 제도는 한 기업의 모든 계열사를 포함한 실제가치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목적이다. 새 제도가 정착되면 시장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던 기업의 내실이 공개돼 주목 받을 수 있는 반면 지금까지 우량하다고 알려졌던 기업이 갑자기 부채 규모가 늘어날 수도 있다.
○ 견실한 기업에는 희소식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액 89조7700억 원, 영업이익 6조3500억 원을 거뒀다. 이를 연결기준으로 계산하면 매출액은 136조2900억 원, 영업이익은 10조9200억 원으로 각각 51.8%, 72.0% 급증하게 된다. 특히 디지털미디어 사업부문은 종전 기준으로는 매출액 3조 원에 영업이익은 적자였지만 연결기준으로는 매출액 12조 원에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선다. 해외 자회사의 실적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다.
연결재무제표 작성으로 중소기업이 일약 중견기업 이상으로 도약하기도 한다. 코스닥종목인 성우하이텍은 매출액이 2008년 2847억 원, 지난해 4000억 원(추정)인 자동차 부품업체. 하지만 해외에서 가동 중인 부품공장들을 모두 합해 연결기준으로 계산하면 매출액이 1조2000억 원으로 4배 넘게 뛰어오른다.
김동준 신한금융투자 투자분석부장은 “새 제도가 도입되면 해외 및 비상장 우량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들이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된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과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합병(M&A)에 성공한 뒤 합병대상 기업의 영업권 가치를 정기적으로 줄여 나가야 했던 기업들도 쾌재를 부르고 있다. 2007년 LG카드를 인수한 신한금융지주는 매년 4200억 원씩 LG카드의 영업권을 상각 처리해왔다. 기존 회계기준은 영업권을 매년 일정액만큼 비용처리하도록 했기 때문. 하지만 새 제도로는 비용처리하지 않아도 돼 장부상 이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러나 자산의 실제가치 반영으로 장부상 이익이 많이 발생하면 그만큼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 만약 자산의 실제가치가 갑자기 하락하면 이로 인한 손실을 반영해야 한다. 또 일단 실제가치를 반영하기로 정하면 그 다음에는 이를 되돌릴 수 없어 기업들은 어떻게 할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영업권의 경우 정기적으로 상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실제가치는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결산기에 한꺼번에 비용 처리해야 하는 악재가 생길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기회와 함께 위험도 그만큼 커진 셈이다.
○ 자산이 부채로?… 비상 걸린 기업들
상환우선주 2000만 주를 발행한 A기업은 새 제도가 큰 위협요인이 됐다. 상환우선주는 기업이 일정 기간 뒤 되사겠다고 발행하는 우선주. 기존에는 이를 자본으로 분류했지만 새 제도는 부채로 본다. 상환우선주를 부채로 환산하면 A기업의 부채비율은 277%에서 340%로 급증해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된다.
특히 건설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금까지는 아파트 공사를 몇 년에 걸쳐 진행하면 매출액과 이익을 매년 나눠 장부에 반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 제도는 공사 완공 후 아파트를 매입자에게 넘기는 시점에 한꺼번에 매출액을 반영하도록 했다. 따라서 공사기간 중에는 이익 나지 않아 손실이 크게 발생하게 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10년 걸리는 공사가 있다면 기간 내내 매출은 전혀 없고 10년 뒤 한꺼번에 매출을 반영하도록 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 기준이냐”고 항변했다.
또 대형 건설사들은 페이퍼컴퍼니(SPC)를 만들어 지급보증을 서게 하는 사례가 많았다. SPC가 별도회사여서 건설사의 장부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새 제도는 SPC도 계열사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부채비율이 늘어나게 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건설사들의 지급보증액은 대우건설 4조4115억 원, GS건설 4조2402억 원, 대림산업 2조6514억 원에 이른다.
근로자들의 근속기간이 길고 임금 수준이 높은 기업들은 졸지에 ‘퇴직 부채’라는 폭탄을 떠안게 됐다. 새 제도에서는 장차 지급해야 할 근로자들의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을 금리 같은 요소를 적용해 현재금액으로 환산한 뒤 이를 부채로 잡도록 했다. B기업은 이렇게 계산한 퇴직연금이 무려 1조8000억 원에 이른다. 근속기간이 동일하다고 해도 현재금액으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금리가 2% 내려간다고 가정하면 B기업의 퇴직 부채는 5400억 원 더 늘어난다. 김도연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제도컨설팅 팀장은 “근로자들의 근속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많은 우량기업이 모두 퇴직 부채 위험에 노출되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주 삼성증권 연구원은 “새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의 실제가치를 다시 평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수치가 바뀌더라도 해당 기업의 현금흐름이 달라지거나 본질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 제도로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기업들과 손쉽게 재무상태를 비교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최금환 금융감독원 회계제도실장은 “국내 기업이 해외 증시에 상장할 때 국제기준에 맞게 다시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며 “삼성전자와 소니, 현대자동차와 도요타를 어렵지 않게 비교할 수 있어 한국 기업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해외 자금조달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