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퇴직연금 전환을 고민하는 직장인입니다. 신문에서 ‘퇴직연금시장에서 확정기여(DC)형이 증가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DC형의 인기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축보다 투자” 인식 늘면서 ‘기여형’ 관심 증대
적립식펀드와 비슷… 이직때도 연속 운용 가능
질문하신 대로 우리보다 먼저 퇴직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갈수록 DC형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확정급여(DB)형을 중심으로 출발했던 나라들도 최근에는 점차 DC형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타워스왓슨과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등 퇴직연금 자산규모가 큰 13개 국가에서 DC형의 비중은 1999년 32%에서 2004년 40%, 지난해 42%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과거 10년 동안 DC형 자산규모는 연평균 6.4% 늘었지만 DB형 자산규모는 1.6%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전통적으로 DB형의 비중이 높은 일본과 네덜란드에서도 DC형으로 전환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미래에 받을 퇴직급여 액수가 정해진 DB형이 유리해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제 환경이 점차 DC형이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 퇴직금 개념으로 DB형을 선택했던 기업들도 기업이 책임지고 퇴직급여를 적립하고 운용해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도 내년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 DB형을 채택한 기업들은 앞으로 지급해야 할 퇴직연금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부채로 잡아야 해 부담이 커집니다.
DC형 퇴직연금은 일종의 적립식 펀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기업에서 매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근로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줍니다. 개인이 매달 일정액을 펀드에 넣는 것과 같죠. 또 투자자가 펀드를 선택하는 것처럼 근로자는 운용방식이 서로 다른 여러 상품 가운데 골라서 투자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운용보고서를 받고 직접 운용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점도 일반 펀드와 같습니다.
2007년 ‘묻지마’식 펀드 열풍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연이어 겪으면서 DC형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품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DC형 퇴직연금에는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노후자산의 핵심이므로 안정적으로 운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식이나 부동산에 직접 투자할 수 없습니다. 펀드형이라고 해도 주식편입비율이 40% 미만인 채권형 펀드에만 투자할 수 있습니다. 한 회사의 회사채 등 특정 투자자산에 다걸기를 할 수 없도록 투자자산별로 한도를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럼 DC형 퇴직연금을 잘 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생애설계 차원에서 목표를 확실하게 정해야 합니다. 은퇴 후에 필요한 자산의 규모를 예상하고 이를 위해서는 수익률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따져봅니다.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보다는 안정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적절한 상품을 선택한 뒤에는 목표대로 잘 운용하고 있는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점검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투자비중도 조정하고 만족스러우면 돈을 추가로 적립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에 따라 운용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도 있습니다. 은퇴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20, 30대는 주식비중을 높이는 등 다소 공격적으로, 은퇴시점이 다가오면 원리금 보장에 비중을 두는 위험회피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DB형 비중이 높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14조424억 원 가운데 DB형이 10조697억 원으로 65.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DB형과 DC형 어느 것이 옳다고 잘라 말할 순 없지만 DB형으로 지나치게 쏠리는 현상은 문제입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근로자는 DB형과 DC형을 동시에 선택해 운용할 수 있습니다. 안정성과 투자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도 DB형과 DC형이 균형 있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