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당신이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누구를 아는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다른 나라 중에도 비슷한 국가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어 가다가 우연히 서로가 아는 공통의 지인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나는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적 관계가 얼마나 촘촘한지 다시 한번 놀라곤 한다. 우리가 만나는 누군가가 내가 아는 누군가의 친구 이웃 친척 또는 선후배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참 많다.
개중에는 이를 두고 서울이란 1억 인구의 거대 도시가 아니라 수천만 주민의 소도시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 사람의 존재는 깡그리 무시하고, 마치 이 도시에는 오로지 나밖에 없다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내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모든 사람에게 배려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문화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처음 한국에 도착해서 더욱 큰 골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런던에서 한번은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왔는데도 어느 쪽으로 건너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막 길을 분간하고 건너려는 순간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내가 길을 건널 것이라 생각하고 차들은 그대로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길을 건너는 나를 배려하는 운전자들에게 감동을 받아 감사의 손길을 보냈다.
영국식의 과장된 친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의 바쁜 도심 거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운전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보행자가 길 한복판에서 30분은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보행 신호가 들어와도 많은 운전자가 보행자의 안전은 뒤로한 채 보행자가 차 앞뒤로 이리저리 피해 가도록 만들지 않던가!
마치 자신과 관계를 형성한 그룹 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행동과 그 이외의 모르는 사람과 상관할 필요 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가로놓인 듯하다. 이를 지켜본 외국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원 문장으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는 법칙이 성립된다.
서울에서 운전해 본 적이 있는 외국인에게 이는 유용한 팁이 될 것이다. 왜 한국 운전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지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양보하지 않는다. 차로 변경을 원할 때 그들은 여러분이 진입을 할 수 있는 공간적 여유를 주는 대신, 차로를 좁히면서 당신 앞으로 들어간다. 택시는 승객의 승하차가 용이하도록 길가에 차를 붙이는 대신 길 한가운데에 차를 세운다. 뒤차가 불편하든지 말든지 말이다. 방향 전환이나 정지도 사전 신호가 없다. 운전자가 진입로에 여유가 생기기도 전에 차를 들이밀고 있어 교차로는 항상 병목 현상에 시달린다. 경미한 접촉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차를 정차해 두고 누구 잘못인지 시시비비를 가리기 때문에 뒤로는 차들이 수 km씩 정체된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운전 연수를 받았다. 나의 아버지는 1930년대에 교통량이 극히 적을 당시에 좋은 운전습관을 익히신 분이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항상 승차한 사람이 편안하도록 운전하라. 항상 직진 회전 정지 등 자신의 의도를 상대편 운전자에게 분명히 알려라. 눈앞에 보이는 공간 안에서 차를 세울 수 없다면 너무 빠른 것이다, 항상 다른 운전자가 광인이라고 생각하고 운전하라.
모르는 이들 향한 배려가 국격
한국에서 개최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이미지의 문제가 부상할 것이다. 따라서 좀 더 나은 매너, 좀 더 공손한 자세,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때 말하는 ‘다른’ 사람이란 내가 속한 그룹 밖의 사람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단발적인 캠페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구적인 변화를 이루어 세계 속의 리더로서의 한국의 성숙함을 이룰 수 있다. 잊지 말자. 당신이 모르는 사람 또한 중요하다.
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