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국에선 이 다소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이 한창입니다. 계기는 커싱아카데미라는 뉴잉글랜드 지역 고등학교였습니다. 이 학교가 지난해 9월 2만여 권의 장서를 전자책으로 모두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죠. 최근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의 기고를 받아 홈페이지에 이 문제에 대한 토론장을 열었습니다.
커싱아카데미의 제임스 트레이시 교장은 중요한 건 종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이 셰익스피어를 읽는 데는 전자책이든 종이든 관계없다는 거죠. 그래서 트레이시 교장은 도서관을 ‘러닝센터’라는 이름의 첨단 정보기술(IT) 학습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대형 TV와 컴퓨터가 설치돼 있고 전자칠판을 통해 학습 성과를 공유할 수 있으며 노트북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카페도 만들었죠.
이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선 요즘 학생들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자책이 효율적이란 겁니다. 도서관에는 없는 책도 많고 보유하고 있다 해도 다른 사람이 빌려가 대출할 수 없는 책도 있으니까요. 전자책은 이런 대출의 제한도 없고 종이책보다 값도 싸 훨씬 많은 정보를 학생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북큐브네트웍스라는 회사가 새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고 제휴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대출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운영비용을 줄일 수 있고 도서관 이용자들은 도서관에 찾아가는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서비스가 보편화되면 점점 전자책도 MP3 음악파일처럼 소비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CD를 MP3 음악파일이 대체한 이후 우리는 의도와 주제를 담아 여러 곡을 써낸 ‘앨범’ 대신 그저 귀에 착 감기는 노래 ‘한 곡’을 살 뿐입니다. 그러면서 비슷비슷한 음악만 넘쳐난다고 불평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런 환경을 만든 것일 텐데 말이죠. 아마 디지털 시대의 작가들도 앞으로 깊이 있는 긴 책을 쓰는 대신 짧은 에세이만 써낼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보화 사회는 디지털로 된 정보의 바다에 비유됩니다. 우리는 지금 그 바다에 풍덩 빠지는 대신 그저 그 위를 쾌속선으로 훑고 지나가는 건 아닌지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