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2010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 씨 별세 李대통령 조화… 조문 줄이어 1946년 악극단서 희극 시작… 개다리춤 바보연기로 전성기 신군부때 방송출연정지 시련… 생활고-투병 등 쓸쓸한 말년
젊은 시절 한 TV 프로그램에서 일명 ‘개다리 춤’을 추며 웃음을 자아내는 배삼룡 씨. KBS 화면 캡처
1990년대 중반부터 흡인성 폐렴으로 투병해오다가 2007년 6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행사장에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병세가 악화돼 지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장남 동진 씨는 “두 달 전 마지막으로 의식이 있었을 때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서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씀하셨다”며 “그 후 병세가 악화돼 계속 눈을 감고 기계에 의존해 호흡하셨고 유언은 남기지 못하셨다”고 말했다.
허약 체질을 연기한 그는 ‘비실이’로 불리며 1970년대 한국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MBC TV가 개국한 1969년부터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동갑내기 구봉서 씨(막둥이)와 명콤비로 활약했다. 이주일 심형래 씨로 이어진 바보 연기의 개척자였다.
그는 1999년 12월 낸 자서전 ‘한 어릿광대의 눈물젖은 웃음’에서 ‘웃음은 남을 주고 한숨은 내가 갖는다’라는 연기 철학을 밝히기도 했으며 ‘한국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다.
젊은 시절 한 TV 프로그램에서 일명 ‘개다리 춤’을 추며 웃음을 자아내는 배삼룡 씨. KBS 화면 캡처
이후 MBC 코미디언으로 TV에 진출한 그를 두고 방송사 간 섭외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1998년 경향신문 기고에서 “1973년 12월 동아방송의 ‘명랑 스테이지’ 공개방송을 녹화하고 나왔는데, 방송사 직원 30여 명이 나를 에워싸고 ‘납치’를 기도했다. MBC 차량에 오르려는 순간 TBC 차량이 돌진하다 구경하던 사람의 발을 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사람팔자 시간문제’ ‘9대 독자 사랑법’ 등 400여 편의 드라마와 ‘요절복통 007’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는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1980년대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연예인 숙정대상 1호’로 지목돼 방송 출연을 정지당했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등을 전전하다가 3년 뒤 귀국했으나 예전처럼 인기를 얻지 못했고 사업도 실패했다. 1997년 악극 ‘눈물의 여왕’으로 재기하는 듯했으나 2007년 쓰러졌으며 최근 1억여 원의 병원비를 못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서울아산병원 빈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송해 이상용 엄용수 임하룡 최양락 김미화 이홍렬 이성미 주병진 박명수 강호동 이영자 이윤석 씨,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등이 다녀갔다. 이명박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정운찬 국무총리, 김인규 KBS 사장 등이 화환을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좋은 세상에 잘 가셔서 사후 세계에서도 많은 즐거움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해 씨는 “외로운 분야를 있는 힘을 다해서 이끌어 오셨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상용 씨는 “몇 년 전 경로위로잔치에 함께 참석했다. 선생님은 ‘내 나이가 80으로 위안을 받아야 하는데 나보다 어린 이들을 위로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생전에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1996년), ‘MBC 명예의 전당’ 코미디언 부문 수상(2001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문화훈장(2003년),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자랑스러운 스승님상’(2009년) 등을 받았다.
인터넷에도 애도의 글이 이어지고 있으며, MBC는 추모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계획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동진 씨, 딸 심애 주영 경주 씨가 있다. 발인은 25일 오전 8시이며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추모공원 휴. 02-3010-2295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 씨, 23일 새벽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