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이 22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 회부 가능성을 제기했다. 권 부소장은 대한변협 주최로 열린 인권 환경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납북행위를 심도 있게 조사하고 입증할 수 있다면 김 위원장을 ICC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변협 행사에서 북한의 반(反)인도범죄에 대한 단죄 가능성이 공론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ICC는 국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2002년 7월 설립됐다. 집단살해 범죄, 인도에 대한 범죄, 전쟁 범죄를 다룬다. 북한 정권이 자행한 납치와 인권탄압은 당연히 ICC의 처벌 대상이다. 거기다 김 위원장은 1970, 80년대에 발생한 일본인 납치를 시인했다. 그는 2002년 9월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 “(납치 문제는) 참으로 불행한 일로서 솔직히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ICC는 지난해 3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대학살과 반인도범죄 혐의로 기소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ICTY도 보스니아 내전 때 인종청소의 주범인 라도반 카라지치를 2008년 1월 베오그라드에서 체포해 재판정에 세웠다. 북한 지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인권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국과 해외 인권단체들의 모임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ICC를 방문해 150여 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겪은 탄압 사례를 담은 고발장을 제출하고 김 위원장의 처벌을 요구했다.
▷북한은 ICC 가입국이 아니어서 ICC가 북한의 범죄자를 조사하거나 기소할 수는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나서면 재판 관할권을 가질 수 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거부권 행사가 확실시되기 때문에 가능하지도 않다. 그래도 김 위원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 북한에 큰 압력이 될 것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최대의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선한 사람들이 일어나서 외쳐야만 북한의 인권이 개선될 수 있다. 통일 후에라도 북한 지도층의 반인도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차곡차곡 증거를 축적해 나가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