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타오른 무대 여성미 함께 숨쉬다
‘2월의 연극여왕’에 뽑힌 배우 윤소정 씨는 6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요염한 포즈로 여왕 등극을 자축했다. 홍진환 기자
○ 겸손한 자신감 묻어나는 야누스적 매력
“연습기간이 워낙 부족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는데….”
“전 한 번도 제가 연기 잘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배우는 발성이 중요한데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어울리는 역이 아닐 때는 연기가 어색하다는 자평이다. 하지만 순간 자존심 강한 에스메와 똑 닮은 말이 나왔다. “그렇다고 동년배 중에서 나보다 잘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하면 또 그런 사람이 없는 게 문제지. 하하.”
자신의 단점을 꿰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이율배반적 매력이야말로 이 노배우의 롱런 비결이 아닐까. 50대인 김방옥 동국대 교수는 “그 나이에 현대적 여성의 복합적이고 분열적인 모습을 동시대적으로 포착하는 감성이 감탄스럽다”고 평했다. 60대 극작가 정복근 씨도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한 섬세한 연기”를 칭찬했다. 30대인 손상원 대표는 “모성애와 여성미가 함께 숨쉬는 연기를 보여준 거의 유일한 배우”라고 말했다.
윤소정의 이율배반적 매력은 에스메와 닮은 듯 다른 연기인생에서 확인된다. 그는 남편 오현경 씨와 더불어 40년 넘게 연극계 간판배우로 활약했다. 배우인 딸 오지혜 씨는 극중 딸인 에이미를 닮았다. 누구보다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마, 이제 그만 은퇴하시지”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사위가 영화감독인 점도 같다. 영화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찍은 사위 이영은 감독은 연극을 본 뒤 “내게 불만이 있으면 직접 말씀하시지 무대 위에서 표출하실 것까지야…”라며 농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연극우월론자인 에스메와 달리 윤 씨는 “내가 사위를 얼마나 예뻐하는데”라며 영상매체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가 연기에 입문한 경로도 영상매체였다. 아버지 윤봉춘 감독의 영화에서 두 번이나 주연을 맡았고 1962년 동양방송(TBC) 공채탤런트 1기로 합격했다.
“당시 나처럼 눈 코 입이 큰 얼굴은 화면에 그로테스크하게 나왔죠. 그래서 연극무대로 돌았는데 멀리서도 이목구비가 뚜렷이 보인다고 좋아들 한걸. 진짜 연기를 잘해 그러는 줄 알고 연극만 한 거예요.”
후배 여배우들을 위해 ‘연극 여배우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들려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다시금 이율배반적 답이 나왔다. “연극배우로 산 것이 제겐 아주 큰 영광이자 행복이었습니다. 여자로 태어나 최고의 직업이 배우이고, 그 배우 중에서 최고가 연극배우라고 생각하니까요. 다시 태어나도 모든 것을 다 주고라도 연극배우를 할 겁니다.”
이런 모습을 ‘천생 여우’라고 하는 것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