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훈 교수 “20세기초 지식인들이 한국부용론-일선동조론 퍼뜨려”
한일강제합병 즈음 일제는 지식인, 교육자, 관리 등을 동원해 한국인들은 자주적으로 발전한 적이 없다는 터무니없는 의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줬다. 사진은 군산에 처음 이주한 일본인들로 1906년경 촬영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00년 전 일제가 한국을 병합할 당시 한국부용론(韓國附庸論)이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일반 일본인들 사이에도 뿌리 깊게 퍼져 있었음을 확인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부용론이란 ‘한국은 자주적으로 발전한 적이 없고 예로부터 중국이나 일본에 복속해 국가의 명맥을 유지했다’는 주장. 일선동조론은 한국이 태고부터 일본의 속국이었으며 한국인과 일본인은 원래 같은 조상을 가진 동족이라는 생각이다.
구태훈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1901∼1910년대 ‘니혼진(日本人)’ ‘다이요(太陽)’ 등 일본 잡지에 실린 일본인들의 한국 인식을 분석해 3월 1∼2일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역사 속의 갈등과 상생’ 국제학술대회에서 ‘혐한론의 원류-100년 전 일본인의 한국인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
이는 일제가 단계별로 국민을 의식화한 결과로 해석된다. 구 교수는 “처음엔 일본 정부가 한국부용론과 일선동조론 색채의 한국 관련 자료를 소책자 형태로 뿌리다가 1890년대 들어서는 지식인들이 나서 한국의 역사 문화 사회를 설명하는 책을 내는 방식으로 의식화를 행했고 1905년 러일전쟁 전후로는 연설회 등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들이 부용론의 근거로 들었던 중국에 대한 조공 등은 당시 국제관계의 한 형태이지 주권을 침해하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아니다. 일선동조론은 자신들의 신화를 역사로 둔갑시킨 것에 불과하다. 구 교수는 “일제는 전 근대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호도한 부용론을 정한론의 근거로 삼은 뒤 1905년 전후로는 병합에 대한 저항을 없애기 위해 일선동조론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와 와세다대 아시아연구기구 등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한국 일본 외 중국 대만 우즈베키스탄 학자들도 참여해 한일갈등의 뿌리, 일제 식민통치와 갈등의 심화, 전근대 동아시아 인식의 양상, 상생의 동아시아사를 위한 제언 등을 주제로 20건의 발표를 할 예정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