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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인철]청도와 임자도의 교훈

입력 | 2010-02-26 03:00:00


소싸움과 반시(盤枾)로 유명한 경북 청도(淸道)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는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고장이 2008년 선거 때문에 군 전체가 한바탕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불법선거운동 등으로 4번 연속 군수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2004년 2월 김상순 군수가 국회의원에게 공천헌금 5억 원을 준 혐의로 구속됐다. 이어 이원동 부군수가 2005년 4월 재선거에서 당선됐으나 업무추진비 3800만 원을 부당하게 쓴 혐의로 2007년 7월 군수직을 잃었다.

후임인 정한태 군수도 2008년 1월 유권자들에게 5억 원을 뿌린 혐의로 구속돼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정 군수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주민 1500여 명이 줄조사를 받은 끝에 52명이 구속됐다. 5만∼10만 원을 받은 유권자들에게 50배까지 과태료를 물릴 수 있지만 지역사정을 고려해 대부분 선처를 받았다. 유권자들이 조사받는 것을 보고 압박을 느낀 선거운동원 2명이 음독자살까지 하는 등 흉흉한 바람이 불었다. 정 군수는 구속된 뒤 “돈 선거 유혹을 이기지 못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졌다. 돈 선거는 이번이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이후 불법선거운동 사례의 단골메뉴로 청도가 거론되고 있고 그때마다 주민들은 치욕감을 느끼고 있다.

다행인 것은 엄청난 후유증을 앓은 이후 청도가 변했다는 것이다. 작은 돈을 받는 것도 죄란 것을 배운 학습효과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올 2월 초까지 조합장 선거가 6번 있었지만 불법선거운동 2건이 고발된 것을 제외하고는 큰 사고 없이 치러졌다고 한다. 돈 많다는 후보들은 대부분 떨어졌다. 청도선관위 정인수 지도계장은 “돌아다녀 보면 돈 선거가 불거질까봐 모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주민 사이에서 6·2지방선거가 깨끗이 치러져 불명예를 꼭 씻어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구 3000여 명인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서 돈 선거 사건이 터져 섬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농협조합장 선거 과정에서 주민의 3분의 1인 1093명이 돈을 받은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일단 돈을 뿌린 후보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15명을 입건한 뒤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아침부터 자수하라는 안내방송이 마을을 깨운다. ‘입건되면 억대 과태료를 물게 된다’ ‘누가 충격으로 숨졌다’는 헛소문까지 돌면서 섬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다. 대처에 나간 자식들은 혹시 시골 부모가 돈을 받지 않았을까 걱정이 돼 날마다 전화를 걸고 집집마다 난리다. 임자도가 진짜 ‘임자’를 만났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탁환식 임자면 이장협의회장은 “선거를 한 번 치르면 섬 마을이 갈기갈기 나뉘어 마음고생이 심하다”며 “주위에서 우리를 어떻게 볼까 얼굴이 뜨겁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6·2지방선거는 시도지사와 시도의원, 구시군단체장과 구시군 의원, 교육감과 교육의원 등 한꺼번에 8명을 뽑는 큰 선거다. 벌써 2000명이 넘는 예비후보가 출마 채비를 하면서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100억여 원을 써야 당선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자칫 또 다른 청도와 임자도가 나오지 않도록 후보나 유권자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