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0년 넘게 시오니즘(유대인 민족주의)과 아랍의 민족주의는 절충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미국은 양측에 평화적 공존을 설득하고 있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년여 전 새로운 사고를 내세우며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개선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의 멋진 연설이 교착상태를 바꾸지는 못했다.
미국 국내정치는 평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혁신적인 사고를 제한한다. 이 과정에 정통한 에런 데이비드 밀러의 말대로 미국은 ‘정직한 중재자’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변호사’처럼 행동했다. 미국 하원에서 팔레스타인을 편드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상징되는 수세기의 유대인 박해는 이스라엘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미국이 위험에 처한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과거에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주민을 지배해도 된다는 자격증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이 미국의 목표를 약화시킨다면 무작정 이스라엘을 편들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이런 정책 중 하나가 요르단 강 서안(西岸)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이다. 20년 전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20년 뒤 오바마 대통령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은 계속되는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의 합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사이 1990년 7만8000명이던 정착민은 지난해 30만 명으로 4배로 늘었다.
오바마 발언 이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정착촌 건설을 거의 동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착촌 지역에 묘목을 심고 이 묘목이 영원히 이스라엘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이율배반적 행동을 보였다. 정상적인 동맹 관계에서 일방의 반항적인 행동은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뒤따른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나는 믿는다. 팔레스타인 파벌들이 그동안 폭력과 반(反)유대인 감정 선동 등을 활용해 평화를 어렵게 만들고, 나아가 미국이 균형 잡힌 정책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살람 파이야드 총리의 인상적인 업적들은 팔레스타인에 책임감을 부여하는 게 모순은 아니라는 점과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땅을 갉아먹는 비열한 정착촌 건설을 그만두라고 얘기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