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김영근 그림 제공 포털아트
공원을 걷다 보면 빈 벤치를 자주 보게 됩니다. 풍경 속에 고즈넉하게 드리워진 벤치의 빈 공간이 참 편안하고 넉넉해 보입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공간처럼 미지의 기대와 설렘을 품고 있어 산책자의 발길을 사로잡을 때가 많습니다. 이윽고 그곳에 지팡이를 든 노인이나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연인 혹은 책을 읽는 젊은이가 앉으면 풍경은 비로소 완성되어 보는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텅 비어 넉넉한 느낌을 주는 공간보다 사람이 앉아 충만해지는 공간이 의자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의자가 빈 공간으로 남아 있으면 주변의 대기가 기다림으로 충만해집니다. 그곳에 누군가가 앉아 휴식을 취하면 주변의 공간 전체가 깊은 안정감을 얻게 됩니다. 그런 기다림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 세상, 그런 안정감이 점점 드넓어지는 세상을 상상하면 의자가 단지 의자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의자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의자가 되는 세상은 얼마나 넉넉할까요.
나는 당신의 의자이고 당신은 나의 의자입니다. 그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교류이고 관계입니다. 가시방석 같은 의자, 뭔가 대가를 치러야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진정한 나눔의 자리가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숱한 위안과 도움을 되새기며 나도 누군가의 의자가 되기 위해 흔쾌히 비울 줄 아는 자세를 배워야겠습니다. 남을 위해 비울 줄 아는 자세, 그것이 스스로 의자가 되는 자세입니다.
내가 지닌 의자를 물려주는 것, 그것은 이미 의자가 된 자신을 후대에 헌신하는 행위입니다. 조병화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그것은 작은 의자 하나가 우주적인 공간으로 확장되고 승화하는 거룩한 순간입니다. 의자가 되는 사람, 사람이 되는 의자가 무궁무진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어드메쯤 /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 그분을 위하여 /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 먼 옛날 어느 분이 / 내게 물려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