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아뮤즈들’세트·연출 ★★★★☆ 대본 ★★★★
집을 나간 엄마에 관한 기억에 붙들려 살아가는 네 남매의 이야기를 담은 ‘고아뮤즈들’. 넷째 이자벨(앞에서 왼쪽)은 남매를 한자리에 모으고 엄마에 관한 기억을 끌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사진 제공 연희단거리패
연극 ‘고아뮤즈들’의 고아 남매 중 첫째 카트린느(김소희)와 넷째 이자벨(강영해)은 황량한 모래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집에서 산다. 마을에서 걸어서 30분은 걸리는 곳. 문만 열어도 모래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부활절 전날, 몇 년째 떨어져 살던 셋째 뤽(윤정섭)과 둘째 마르틴느(함수연)도 이자벨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네 남매는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남매를 버리고 스페인 남자를 따라 떠난 엄마 때문이다. 카트린느는 벅찬 어머니 역할을 해야 했고 뤽은 엄마에 관한 책만 10년째 쓰고 있다. 엄마가 남겨준 스페인 옷을 입으며 엄마 행세를 하기도 한다. 마르틴느는 군인이었던 아버지처럼 군인이 됐다.
‘고아뮤즈들’은 캐나다 퀘벡 출신 극작가인 미셸 마크 부샤르의 작품이다. 1988년 작품으로 2009년 국내 초연됐다. 올해 공연에서는 무대세트가 크게 바뀌었다. 1965년 캐나다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살리는 대신 2층 높이에 달린 문, 가파른 계단, 객석 앞에 깔린 모래 등 단순하고 상징적인 연출을 택했다. 무대를 앞뒤로 사용하기보다 수직적으로 활용해 엄마의 깊숙한 품 안, 혹은 남매의 상처받은 감정이 찌꺼기처럼 고여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남매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자유를 찾아 스페인으로 떠난 독립적인 여성이다. 상처를 줬지만 동시에 살아갈 영감을 주는 뮤즈였던 셈이다. 그러나 극의 말미에는 아이들을 떠난 뒤 엄마의 행로에 대한 반전이 준비돼 있다. 남매가 엄마에 대한 환상을 깨고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다. 극 역시 한 겹의 갈등을 추가한 결과 좀 더 탄탄해진다.
캐나다의 마을, 그리고 부활절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이 한국 관객에게 낯설지만 가족이라는 보편적 소재, 그리고 배경을 탈색시킨 상징적 무대 연출이 그 낯섦을 중화시킨다. 1만∼2만 원. 7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게릴라극장. 02-763-1286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