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세신 PD의 반상일기]‘빙상 삼총사’ 만큼 빛난 ‘반상 삼총사’

입력 | 2010-03-04 03:00:00


세계대회에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려온 한국이 지난주 열린 제2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16강전에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한국 기사들은 8강 중 여섯 자리를 확보했다. 한국 바둑의 전성기 시절을 보는 듯했다. 16강전 직전 중국 랭킹 1위인 쿵제(孔杰) 9단이 한국 랭킹 1위인 이창호 9단을 2 대 0으로 일축하고 LG배 세계기왕전을 가져간 직후라 반가움이 더했다. 여기엔 이세돌 안조영 9단과 박정환 7단 등 삼총사의 활약이 돋보였다.

2월 27일 비씨카드배 16강전 이세돌 9단과 쿵 9단의 대결은 향후 세계바둑 판도를 가늠할 만한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이 9단이 복귀 후 외국 기사와 갖는 첫 대국인 데다 상대가 중국 랭킹 1위, 세계대회 3관왕이어서 결승전에 필적하는 대국이었다.

유창혁 9단은 LG배 결승 중계를 하다 이창호 9단의 패배를 안타까워하며 “저런 기세는 언제까지 갈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꺾어줘야 한풀 꺾입니다”라며 분발을 촉구했다.

쿵 9단은 최근 TV아시아선수권, 삼성화재배, LG배를 연달아 제패하는 과정에서 ‘한국기사 킬러’로 맹위를 떨치며 국제대회 13연승 행진을 이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이세돌 9단마저 무너진다면 세계 바둑계는 바야흐로 ‘쿵(孔)의 시대’로 접어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세돌’이라는 찬사가 나올 만한 바둑이었다. LG배 결승 후 김성룡 9단이 “초반, 중반이 100점이라면 끝내기는 120점”이라고 평했던 쿵 9단도 신출귀몰한 이 9단의 변신술 앞에 중반전 이후 서서히 무너져갔다. 계속 물러서자니 질 것 같고, 덤비자니 다 잡힐 것 같고…. 상대에게 어려운 선택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세돌 바둑의 강미가 빛을 발한 한 판이었다. 결국 이 9단이 쿵 9단의 대마를 잡고 쾌승했다.

이 대국과 동시에 펼쳐진 박정환 7단과 퉈자시 3단 간의 양국 차세대 대결도 물러서기 어려운 승부처였다. 퉈 3단은 2009 중국갑조리그 MVP를 차지한 중국의 비밀병기. 284수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박 7단이 역전승을 이뤄냈다.

다음 날 열린 16강전에서도 한국의 기세가 이어졌다. 안조영 9단이 예상을 깨고 대회 원년 우승자 구리 9단에게 반집승을 거둔 것이다. 안 9단은 국 후 인터뷰에서 “구리 9단 기보는 평소 이해가 안 되는 수가 너무 많아 이번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애초 목표는 8강까지였는데 이제는 끝까지 가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이 주말 3연전을 모두 승리해 중국은 이틀 사이에 랭킹 1, 2위를 한꺼번에 잃었다. 중국은 8강에 창하오 9단과 무명의 뉴위톈 7단만 올려놓았을 뿐이다. 덕분에 앞으로 남은 경기들을 마음 편하게 관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겨울올림픽 빙상 삼총사인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선수처럼 바둑 삼총사의 활약이 돋보인 한 주였다.

이세신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