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피리를 불면 세상은 춤을 춘다
안은경 씨는 피리 하면 서양악기 ‘리코더’를 연상하는 현실이 불만이지만 그만큼 할 일이 많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꿋꿋하지만 살가운 면도 많은 피리 음색이 한국인의 심성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김미옥 기자 ▶dongA.com에 동영상
“피리의 장점요?” 그의 눈이 반짝 커졌다. “작고 싸요!”
장난기 섞인 웃음을 머금은 채 피리 연주자 안은경 씨(27)는 말을 이었다. “최고의 프로도, 오늘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도 똑같은 악기를 써요. 배낭에 쏙 들어가고, 아무 때나 쓱 뽑아서 길거리 연주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눈빛이 한층 진지해졌다. “음량이 커서 합주 때는 다른 악기를 이끌지만 의외로 귀를 간질이는 잔잔한 속삭임이 있어요. 그게 제가 피리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죠.”
안 씨는 여유 있는 집안의 ‘재롱둥이’ 둘째 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월드비전 선명회 합창단 단원으로 기예를 익혔다. 외교관이 되겠다는 여중 2학년생에게 어머니는 “국악기를 연주해 문화외교관이 되면 어떠냐”고 권했다. 한국무용을 전공했던 언니를 보며 자연스럽게 젖어든 피리 소리가 마음을 끌었다. 국립국악고 졸업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피리를 전공하던 그에게 2003년 새로운 전기가 찾아왔다. 우연히 접한 국악작곡가 류형선 씨의 피리곡 ‘나무가 있는 언덕’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강렬하면서도 잔잔한 피리의 개성을 너무도 잘 표현한 곡이었죠. 무작정 작곡가를 찾아가 이 곡을 연주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같은 해 독주회를 열면서 연주가로 세상에 나왔다. 대학 3학년생으로는 과감한 도전이었다. 혼자 힘으로 장소를 빌리고 프로그램북을 만들고 협연자를 섭외했다. 안 씨의 연주가 마음에 들었던 류 씨는 해금연주가 강은일, 소리꾼 김용우 씨에게 그를 소개했다. 두 선배 국악인의 콘서트에 참여하자 많은 청중과 국악인들이 ‘저기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은 누구지’라며 관심을 보였다. 특히 강 씨와의 교류는 내적 세계를 크게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
“보통 사람은 말로도 자기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잖아요. 강 선생님은 악기만 가지고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시는 점이 놀라왔어요. 그 점을 닮고 싶었고, 또 배웠습니다.”
○ “악기만으로 모든 감정 표현하는 법 배워”
2006년 두 번째 독주회에 이어 2007년 제3회 독주회 ‘환을 치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진예술가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는 재독 한인음악가들로 구성된 독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닉 체임버홀에서 이영조 작곡 ‘피리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류(流)’를 협연해 갈채를 받았다. 대부분 독일인들로 구성된 청중은 처음에는 고운 당의(唐衣) 차림에, 두 번째로는 작은 악기에서 울려나오는 의외로 강렬한 소리에, 세 번째는 풍부한 표현력에 환호를 보냈다. 11월 선보인 첫 독집 앨범 ‘퓨리티(Purity)’도 주목을 끌었다.
그는 공연장을 가리지 않는다. 명동 거리에서 열리는 자선 콘서트에서도, 와인바 콘서트에서도 피리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한국 청중이 피리 소리에 맞춰 저절로 몸을 흔드는 게 신기하고, 모르는 팬들이 인터넷에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게 기쁘다고 했다.
“계획요? 지금 당장은 갈증을 푸는 게 급해요. 더 많은 사람에게 피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은 갈증이죠. 그러다 보면 길이 또렷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뿐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정악을 비롯한 전통 피리 연주는 평생 연습 또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하잖아요! 국악인으로서 제 바탕을 이루는 일인데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동영상 = 피리연주자 안은경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