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은 ‘노숙 배추’다. 겨울눈밭에 내팽개쳐진 배추다. 가을배추를 거두고 남은 무녀리배추 뿌리에서 싹이 나와 자란다. 지난 늦가을 온 몸으로 찬 서리를 맞으며 살았다. 겨우내 대책 없이 눈을 뒤집어 쓴 채 보냈다. 칼바람에 잎과 줄기가 녹작지근해졌다.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하다보니, 속을 꽉 채울 겨를이 없었다. 잎이 옆으로 펑퍼짐하게 퍼져 볼품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맛있다. 들척지근하고 풋풋하다. 요즘 시장에 나온 봄동은 아예 9월 말이나 10월 초쯤 김장배추 씨앗을 뿌려 겨우내 키운 것이다.
봄은 입맛으로부터 온다. 날이 풀리면 입안이 헛헛하다. 풋것이 사무치게 먹고 싶다. 봄동 겉절이 생각이 간절하다. “아삭! 아삭!” 머리근육이 달뜬다. 사각사각 사과 깎는 소리만 들어도 모세혈관이 간질간질하다. 봄동은 된장에 무쳐 먹어도 달달하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쑥은 따뜻하다. 몸이 찬 사람은 봄쑥이 좋다. 오죽하면 ‘봄쑥은 처녀속살을 키운다’는 말까지 있을까. 칼슘 비타민A 비타민C가 듬뿍 들어있다. 섬에서 나는 쑥을 으뜸으로 친다. 짭짤한 바닷바람에서 자란 쑥이라야 약쑥이 된다. 경남 남해나 전남 여수 거문도는 온통 쑥밭천지다. 집집마다 논밭에 쑥을 재배한다. 통영 도다리쑥국도 바로 섬쑥을 넣는다. 쑥은 끓일수록 독특한 한약냄새가 난다. 살짝 끓여 먹어야 제맛이 난다.
아이들이 바구니와 칼을 들고 봄 들판에 나가 가장 먼저 캐는 게 쑥이다. 논밭두렁에 코를 박고 여린 새싹들을 캔다. 쑥은 지천이다. 불탄 자리에 우우우 잘 돋아난다. 무덤가 양지바른 곳에도 쫑! 쫑! 쫑! 모여 있다. 알싸하고 상큼한 향기. 소쿠리 가득 봄을 채운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시냇가에 앉아서 다리도 쉬고/버들피리 만들어 불면서 가자/꾀꼬리도 산에서 노래 부르네’
<김태오 작사 박태현 작곡 동요 ‘봄맞이 가자’에서>
냉이는 간에 좋다. 술꾼들 속 푸는 데 안성맞춤이다. 된장과 궁합이 맞는다. 된장국에 냉이 몇 뿌리만 넣어도 온 집안에 봄 냄새가 가득하다. 냉이는 칼슘과 비타민C가 무궁무진하다. 쑥이나 달래보다도 많다. 살짝 데친 뒤 소금과 들기름으로 무쳐 먹어도 맛있다.
달래는 매콤하고 쌉싸래하다. 알큰한 ‘작은 마늘’이다. 달래 먹고 맴맴, 코를 톡 쏘는 맛이 좋다. 비타민A가 냉이의 3배, 쑥의 2배나 들어있다. 조선양념간장에 넣어 날로 먹는 ‘달래간장’이 최고다. 기운 약한 사람은 달래를 먹으면 에너지가 솟는다. 어질어질 빈혈 예방에도 좋다. 달래는 칼이나 호미로 캔다. 하얗고 둥근 뿌리가 미끈하다. 햐아, 한겨울 언 땅에서 어떻게 저런 알뿌리를 키웠을까. 아차! 하다간 중간에 잘려 뿌리를 놓칠 때도 있다.
미나리는 차다. 몸이 뜨거운 사람에게 좋다. 오줌줄기도 시원스럽게 해준다. 몸 안에 있는 독을 배출해준다. 미나리무침이나 미나리강회는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미나리꽝은 늘 더러운 물로 찰랑인다. 하지만 미나리는 꿋꿋하다. 그 속에서도 기세 좋게 잘도 자란다. 그래서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다’. 장다리는 무나 배추의 꽃줄기다.
돌나물은 사막에 떨어뜨려놓아도 살 것이다. 생명력이 끈질기다. 돌에서도 살 수 있어 돌나물이다. 뿌리를 깊게 박지 않고도 잘만 산다. 온통 칼슘 덩어리이다. 배추의 5배나 된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아삭아삭하다. 씹히는 느낌이 좋다.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봄을 먹는다. 앞산에 아지랑이가 꼬물꼬물 올라간다. 소쿠리엔 냉이 달래 원추리 시금치 머윗잎이 가득하다. 개다리소반 위엔 미나리무침에 달래간장 그리고 쑥국이 코를 찌른다. 막걸리 한 사발 쭈욱∼ 들이켠다. 봄이 참 달다.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꽃이 된 것아/…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내 유년에 날아오던/돌멩이만 남고/황막하구나/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너 여리운 풀은.’
<이근배의 ‘냉이꽃’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