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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큰일났다,앨리스가 훌쩍 자라버렸다

입력 | 2010-03-05 03:00:00

팀 버튼-조니 뎁 콤비 3D 가미해 재해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아시나요?”

누구라도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일 질문.

정말 그럴까.

“큰일이다! 지각이야!”라고 중얼거리며 달려가는 토끼의 뒤를 쫓아 나무둥치 속 통로를 지나서 이상한 나라로 떨어진 도입부의 기억은 선명하다. 그런데 앨리스가 거기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꽁꽁 묶인 채 소인국에서 깨어난 걸리버가 그 뒤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흐릿한 것과 비슷하다.

앨리스를 기억하는 일은 간밤 꿈속 경험을 짜 맞추려 애쓰는 일만큼 난감하다. 기억은 캐릭터 하나하나에 조각난 채로 붙어 있다. 신하 목 자르기를 즐겼던 하트의 여왕. 웃는 고양이. 미친 모자장수…. 한 번 들으면 도무지 잊기 어려운 외모와 성격이다. 하지만 그들과 앨리스가 나눈 대화의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4일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전체 관람가)도 마찬가지다. 팀 버튼 감독은 루이스 캐럴이 문장으로 묘사했던 캐릭터들을 영상으로 충실히 재현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발표하고 나서 6년 뒤에 쓴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포함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 대부분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시각적 세공의 치밀함은 놀랍다. 글을 통해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의 매드 해터, 트위들디 트위들덤이 스크린 위에서 3차원(3D) 기술의 힘으로 올록볼록 살아 움직인다. 그동안 버튼 감독이 ‘비틀쥬스’, ‘배트맨’, ‘가위손’, ‘화성 침공’, ‘슬리피 할로우’ 등에서 빚어낸 엽기 캐릭터가 결국 모두 앨리스 월드를 만들기 위한 연습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하트의 여왕과 웃는 고양이를 보면 “오직 버튼만이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제작자 조 로스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영화는 소설의 모호함까지 그대로 가져왔다. 그것은 의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내러티브 만들기의 실패 탓에 생긴 모호함으로 보인다. 1991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후크’에서 로빈 윌리암스의 피터팬이 그랬듯 훌쩍 자라 이상한 나라의 기억을 잊은 앨리스를 등장시킨 것은 신선하다. 다시 굴속으로 뛰어든 앨리스가 ‘나를 마셔요’ 약을 마시고 작아졌다가 ‘나를 먹어요’ 케이크를 먹고 커지는 장면은 반가운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그 뒤로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과 교배해 만든 듯한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아르웬의 얼굴에 김리의 갑옷을 걸친 프로도가 아라곤의 칼을 들고 사우론과 싸우는 모습을 보는 듯한 뒤죽박죽이다.

3D를 꼭 써야 했을지도 의문이다.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는 장면 외에 3D의 효과는 밋밋하다. 버튼 감독이 2001년 ‘혹성 탈출’ 이후 보이기 시작한 노쇠의 기미가 밋밋한 이야기에서 씁쓸하게 확인된다.

버튼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최초로 영화감독 특별전을 열게 한 인물이다. 하지만 21세기의 버튼 감독은 박물관 전시품처럼 경이롭긴 하되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20년 전 ‘가위손’ 이후 일곱 번째 손발을 맞춘 조니 뎁과의 콤비플레이는 흠 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그러나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에만 몰입한 것은 아닐까 종종 의심이 든다. 남는 것은 캐릭터와 몇몇 인상적 장면의 단편적 기억이다. 캐릭터를 빌려준 원작 탓은 물론 아닐 것이다. ★★★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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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