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없는 굴뚝, 밤하늘 별 총총
여기가 세계 최대 유화단지라니…
공장전체 2000km 파이프 연결 ‘통합 재활용 시스템’
에너지-원료 한방울까지 쥐어짜 CO2 배출 최소화
독일 루드비히스하펜에 자리 잡은 바스프(BASF)의 종합석유화학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이지만 인근 공기는 시골 못지않게 맑다. ‘기후 보호’를 생존의 필수 요소로 여기는 경영 철학 때문이다. 바스프의 기후 보호 전략의 핵심은 ‘에너지와 자원을 남김 없이 쓴다’는 것이다. 공장 전체를 연결한 2000㎞의 파이프를 이용해 한 공장에서 쓰다 남은 에너지와 원료는 다른 공장으로 돌려 쓴다. 사진 제공 바스프
기후 보호는 바스프에 있어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바스프는 지난해 기후변화협약 총괄 담당 직책인 ‘CPO(Climate Protection Officer)’를 신설했다. 이에 앞서 2008년에는 ‘탄소 발자국(Corporate Carbon Footprint·제품이 만들어진 후 폐기될 때까지 배출하는 탄소의 총량)’ 보고서를 처음 공개했다.
울리히 폰디센 CPO는 “바스프는 에너지 효율, 기후 보호, 자원 보존을 위한 공정 및 제품의 연구개발에 연간 4억 유로(약 6209억 원)를 투자하고 있다”며 “2020년까지 에너지 효율을 25% 끌어올리고 온실가스 배출은 25% 저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스프는 “몇 개의 원료로 수십 개의 기본 물질을 만들고, 기본 물질로 수백 개의 중간물질을 만들고, 이를 다시 수천 개의 상업용 제품으로 생산하는 것이 바스프의 노하우”라며 “이런 노하우를 100년 넘게 쌓아왔다”고 소개했다. ‘재활용의 귀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았다.
이렇게 남은 물질들을 돌리고 또 돌려, 남은 한 방울까지 쥐어짜 쓰기 위해서는 공장들끼리 파이프로 연결돼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바스프는 ‘페어분트(Verbund)’라고 부른다. 독일어로 ‘통합(integration)’이라는 의미다.
공장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파이프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2000km나 된다.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성 극대화는 결국 CO₂ 배출량 감소로 이어진다. 바스프 관계자는 “페어분트 덕분에 연간 CO₂ 배출량을 340만 t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스프 제품을 쓴 소비자들이 연료를 절감하고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도 바스프의 기후 보호 프로젝트 중 하나다. 연료를 절감하기 위해선 자동차를 좀 더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거나 단열 기능이 뛰어난 건축자재를 써야 한다. 바스프는 자동차 부품 소재 및 건축 자재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이 부문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첨단 건축자재 이용해 만든 ‘3L 하우스’
일반 주택 7분의 1 연료로 따뜻하고 시원
바스프와 현대자동차가 함께 개발한 미래형 콘셉트 카 ‘아이플로(i-flow)’가 대표적 상품이다. 아이플로는 14일까지 스위스에서 열리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아이플로에는 금속을 대신할 정도로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울트라미드(Ultramid)’가 사용됐다. 울트라미드는 아이플로의 좌석 틀에도 사용되고 변속기 베어링에도 들어갔다. 이렇게 금속을 플라스틱으로 바꿔 무게는 25∼30kg 줄였다.
불필요한 열 손실을 막아주는 ‘엔진 보온 시스템’도 눈에 띈다. 엔진이 최적 주행 온도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도심에서 운전할 때는 운행 시간이 토막 나기 때문에 불필요한 연료 소비도 많아진다. 바스프는 엔진에 단열재인 경질폼 폴리우레탄 소재를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라이마르 얀 자동차 사업지원 총괄 사장은 “현대차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번에 선보인 새로운 자동차 부품들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건축자재는 연료 절감, 탄소 저감화를 위해 바스프가 주력하는 제품군이다. 루드비히스하펜 내 브룬크 쿠라터 지역에는 ‘3L 하우스’로 불리는 집이 있다. 지은 지 70년이나 돼 낡을 대로 낡은 아파트를 첨단 건축자재로 리모델링한 집이다. 이 집은 m²당 연간 3L의 연료만으로 최적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바스프 측은 “보통 독일의 가정에서는 연간 21L 정도의 연료를 사용하지만 고효율 보온단열재, 3중유리 창호, 연료전지, 열교환 환기 시스템을 적용한 이 집은 연료 소비량을 최대 3L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단열뿐 아니라 집안에서 사용되는 에너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재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붕에 설치된 중앙환기시스템이 바로 그것. 부엌이나 욕실 온도는 일반적으로 집 안의 다른 공간보다 온도가 높은데, 부엌과 욕실에서 나오는 따듯한 공기를 중앙환기시스템으로 보내 집 전체에 순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서도 3L 하우스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바스프와 대림산업이 2005년 경기 용인시 대림산업 연수원 내에 지은 건축 면적 125m²(약 38평), 2층 규모의 주거용 주택이 3L 하우스다.
주요 연구 개발 분야는 열전기(Thermoelectrics) 효율 개선이다. 열전기란 열을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기술이다. 자동차에 열전기 모듈을 부착하면 자동차 연료가 연소될 때 나오는 열을 전기 에너지로 바꿔, 차체의 다른 부분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의 재활용인 셈. 이 밖에도 자기(磁氣)를 받으면 열을 내는 자기열량 물질(magnetocaloric materials), 에너지 저장 효율이 높은 리튬이온 건전지 및 유기 태양전지(Organic Photovoltaics·OPV)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루드비히스하펜(독일)=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