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주유소-가게 찾아 동분서주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치안유지
무너진 건물에선 구조활동 계속
“재 해 복구하는데 3, 4년 걸릴 것”
칠레 강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제2의 도시 콘셉시온 주민들은 이제 생필품 확보 및 재건이라는 두 번째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4일 낮 12시 콘셉시온. 집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주민들이 어디론가 줄달음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할 틈조차 없어 보였다. 10여 분을 같이 달렸을까. 헐떡헐떡 가쁜 숨을 내쉰 뒤 주위를 둘러보니 칠레 국립은행 앞이다. 어느새 100여 명이 몰려들어 줄을 선 채 오랜 기다림을 시작했다. 회계사 일을 하고 있다는 루이스 벨리스 씨(52)는 “오늘에야 은행이 처음으로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지진 사태로 받지 못한 지난달 봉급을 수령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월드컵 축구 남미 예선을 2위로 통과한 축구 강국답게 공터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청년들의 활기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근심은 저 멀리 달아난 듯 밝은 표정들이었다.
실제로 콘셉시온 주민들의 절망의 그림자 뒤에는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의지가 엿보였다. 식료품을 사기 위해 길을 나섰다는 마리아 파스 히리바렌 씨(45)는 “오후 6시까지 딱 6시간의 자유”라며 “필요한 것을 미리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나머지 18시간이 괴롭게 된다”며 잰걸음을 옮겼다. 다른 주민들도 이날 개장한 잡화점에서 구입한 오렌지주스, 물, 기저귀 등을 손에 들고 또 다른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이 같은 폐허 속의 분주함은 콘셉시온 시내를 장악한 군과 경찰력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다. 주요 관공서나 주유소, 은행, 약국, 생필품 가게 등에는 예외 없이 완전무장한 군인 3, 4명이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시민은 “이곳은 현재 군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진이 난 지 72시간이 지나 이후에야 군 투입 결정을 한 건 패착(敗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내 전체는 폭격을 맞은 듯 볼썽사납게 무너져 내린 건물들과 화재 후 나오는 연기로 음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시내에는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다니고 있었고 자전거의 행렬도 눈에 띄었지만 지진으로 제 기능을 상실한 도로와 심하게 균열된 아스팔트 탓에 통행은 자주 방해를 받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 되자 생기 있게 도시를 다니던 주민들의 얼굴에 다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후안 카르바초 씨는 “가족들과 촛불을 켜고 대화를 하곤 하지만 통행금지 시간 이후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가택연금 상태가 된다”며 “지진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5일 오전 6시경에는 규모 6.3의 강력한 여진이 또 발생했다. 이미 집과 삶의 터전을 잃은 시민들은 새벽잠에서 깨어나 건물 밖으로 대피해야 했다.
반기문 총장 방문, 유엔지원 밝혀
칠레 방문길에 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5일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을 만나 칠레 정부와 희생자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유엔의 의지를 밝혔다. 산티아고 공항에 내린 반 총장은 바첼레트 대통령과의 면담 후 즉각 콘셉시온을 방문했으며 6일까지 피해지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4일 오후 바첼레트 대통령은 콘셉시온을 방문해 “재해를 복구하는 데 3, 4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