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한 마리의 희망’ 모금전 벌인 한국여성수도자모임 삼소회
‘염소 한 마리의 희망-에티오피아 소녀·여성돕기 기금마련전’을 성공리에 마친 삼소회 회원들이 법정 스님의 친필 액자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원불교 김지정 교무, 기독교 이영숙 언님, 원불교 안자은 교무, 불교 일양 스님, 천주교 이정순, 잔다크 수녀, 원불교 최형일 교무. 서영수 전문 기자
지난달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아트 스페이스. 지나던 사람들이 신기한 광경이라는 듯 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본다. 몇몇 사람은 아예 안으로 들어와 합류한다. 좁은 전시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불교 비구니, 천주교와 성공회 수녀, 기독교 언님, 원불교 교무 등이 바쁘게 움직였다. 노래를 부르고 차를 접대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풍경이다.
한국여성수도자모임 삼소회(三笑會)가 마련한 ‘염소 한 마리의 희망-에티오피아 소녀·여성돕기 기금마련전’은 이처럼 개막식부터 성황을 이뤘다.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이 소장해온 수묵화, 법정 스님의 친필 2점, 원불교 경산 종법사의 친필 휘호, 이해인 수녀가 직접 쓴 시화 5점, 이현주 목사의 목각 작품, 쇠귀 신영복, 도올 김용옥 등 각 종교계 인사와 명사들이 이들의 취지에 찬동해 작품이나 소장품을 보내왔다. 일부 작품은 전시가 되기 전 이미 전화 주문으로 임자가 나섰다.
―성과가 좋았습니까.
“예. 35점의 출품작이 거의 대부분 팔렸어요. 저희들이 당초 생각했던 목표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염소 한 마리의 희망’을 기획한 동기는….
“삼소회에서는 9·11테러 10주기인 2011년 유엔에서 인류 평화와 종교 화합을 상징하는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유엔 측과 접촉하던 도중 유엔재단 측이 ‘에티오피아 소녀·여성 돕기’를 삼소회에서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와 수락을 했지요.”
“6·25전쟁 참전 16개국 중 하나인 에티오피아는 오랜 내전과 가뭄 등으로 영아사망률이 세계 1위이고 인구의 40%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고살 길이 없는 에티오피아 소녀의 부모는 돈 몇 푼에 자식을 팝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의 10대 소녀들이 15세 이전에 결혼해 준비되지 않은 출산으로 어머니가 됩니다. 염소 한 마리가 2만 원인데 염소 한 마리가 있으면 소녀는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젖을 짜서 우유를 먹고 소녀를 학교에 보내는 조건입니다. 교육을 통해 특히 여성들의 의식이 열리고 자력을 갖추도록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어떤 목표를 세우셨습니까.
“3년 동안 10억 원을 모금해 전달할 계획입니다. 소문을 듣고 몇몇 이벤트 회사에서 수익금의 일부를 나누는 조건으로 갖가지 이벤트를 제의해 왔지만 회원들과 논의 끝에 거절하고 힘들더라도 ‘우리끼리 죽기 살기로 해보자’고 결정했지요. 기도하면서 죽자고 고생하면 안 될 것도 없지 않겠어요.”
한국은 ‘종교적’으로 연구 대상인 국가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가 나름대로 막강한 세를 형성하며 ‘공존’하고 있다. 게다가 교리는 이들 종교의 발상지보다 훨씬 떠 ‘교조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5개 종교 여성 수도자들이 이처럼 다정하고 화목하게 활동하는 것은 ‘작은 기적’이자 ‘미래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어느 스님 방에서 몇몇 종교 수도자들이 차 한 잔을 마신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이후 각 종교에서 뜻있는 의식이나 행사가 열리면 서로를 초청해서 식사를 하고 성전도 구경하면서 친분을 쌓아나갔지요. 또 한 번씩 북한산과 도봉산을 등산하고 원불교 성지가 있는 변산반도 등을 여행하면서 영적인 대화도 나눴지요.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장애인올림픽이 열리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너무 적은 것이 안타까워 10월 3일 호암아트홀에서 자선음악회를 열면서 현장 스님이 ‘삼소회’란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마침 그날이 개천절이어서 ‘하늘이 열린 일만치 대단한 일이다’라는 칼럼을 쓴 이도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증명법사’로 팸플릿에 글을 써 주셨고, 피천득 선생님이 오셔서 격려를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무슨 유래가 있을 텐데요.
“원래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말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도연명(유교), 육수정(도교), 혜원법사(불교) 등 세 종교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호계교 다리 위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는 중국고사에서 나왔습니다. 세 사람의 생존연대에 비추어 한자리에서 만날 수 없었는데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걸 보면 그 당시에 이미 종교 간의 분쟁과 불화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들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당시 로마 교황청에서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적극 권하신 덕을 봤지요. 불교는 원래 너그러운 종교 아닙니까. 원불교도 당시 대산 종법사께서 종교인들이 화합해 종교연합(UR·United Religions)을 만들어 타 종교와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세상은 마치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가 없는 가정과 같습니다. 정치 유엔(UN·United Nations)을 엄한 아버지라고 한다면 자비로운 어머니와 같은 UR가 탄생되어야 비로소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초창기 멤버인 김옥희 다미아나 수녀, 정목 효원 스님, 이하정 교무들이 종단의 어른들을 설득하고 서로 이해하며 애를 많이 썼지요.” 음악회 수익금은 장애인선수촌에 전달하고 노래도 선물했다.
이들은 그동안 소리 소문도 없이 많은 사회봉사활동을 했다. 1991년에 시화전을 열어 수익금을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과 뇌성마비장애인협의회에 기증했고, 1999년에는 북한어린이돕기음악회를 열어 수익금으로 만든 아동복을 평양에 전달했다. 2003년 여성수도자들의 출가 동기를 진솔하게 고백한 단행본 ‘출가’를 출간했고, 2006년에는 회원 16명이 원불교 발상지인 전남 영광을 출발해 인도 영국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 불교 기독교 유대교 등 세계 종교 성지를 19일 동안 순례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기적처럼 성사됐다. 바티칸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한 뒤 정진석 추기경 서임 발표를 현장에서 듣는 기쁨을 누렸고, 바라나시에서 달라이라마도 친견했다. 달라이라마는 이들에게 “자기 종교에 신념을 갖되 다른 종교를 존중하라”고 당부했다. 물론 종교적 신념과 습관 예법에서 오는 차이와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화와 이해로 모든 것을 풀어나갔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신앙을 바꾸거나 범신론자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어떻게 활동하십니까.
“한 달에 한 번 종교 화합과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갖습니다. 장소는 형편이 가능한 대로, 절이나 성당 또는 교당에서 10명 내외가 모입니다. 그때마다 회비 5000원씩을 거둡니다. 젊은 수도자들이 좀 더 많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4개 종단 여성 수도자들로 시작했는데 지난해부터 기독교에서도 참여를 했습니다.
“예, 개신교의 여성독신수도자인 ‘언님’들이 합류했습니다. 한국신학대 김경재 명예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1970년대 안병무 선생의 지도와 인도로 발족했고, 공식 명칭은 디아코니아(봉사 섬김의 의미)자매회입니다. 목포와 천안에 10여 분이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예. 특히 남성 수도자들께서 행사 때마다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언론에서도 좋게 보아주시고. 아 참, 광주에서 최근 남성 수도자 삼소회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앞으로 ‘염소 한 마리의 희망’은 어떻게 전개됩니까.
“우선 4월 말경 유엔재단의 기금 창단식에 참석해 약정식을 갖게 됩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도 계시니 저희들이 꼭 약속을 지키고 모범을 보여야겠지요. 2012년까지 목표액을 달성할 계획입니다. 에티오피아에도 곧 가볼 생각입니다. 많은 분의 협조와 동참을 부탁합니다.”
‘염소 한 마리 희망’ 캠페인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독지가는 삼소회(02-723-2996)로 연락하면 된다.
오명철 기자 oscar@donga.com
▼ “비구니는 적극적, 수녀는 질서 엄격, 언님은 반듯해” ▼
김지정 원불교 교무
여성 수도자들은 출가 전 자신의 과거와 출가 동기를 밝히는 것을 극구 싫어한다. 그 대신 “왜 수녀, 비구니가 되셨느냐”고 묻지 않는 이들을 좋아한다.
20년이 넘는 교분을 통해 단편적으로 조각조각 알게 된 김지정 원불교 교무의 이력은 이렇다. 부산출생으로 독실한 원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경남여중과 여고를 졸업했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공채로 부산일보에 입사해 몇 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5·16군사정변 후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퍼스트레이디가 된 육영수 여사를 단독으로 만나 기사를 쓰기도 했다. 출가 후 원불교에서 내는 잡지 ‘원광’에서 일했고 부여 교당에서 3년간 일반 사목을 했다.
이후 서울 교구 소속의 출판사 ‘솝리’에서 줄곧 일해 왔다. 출가 후 거의 대부분을 글을 다듬고 고치는 일을 해와 원불교 원로에게 붙이는 법호가 문타원(文陀圓)이다. 고추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모든 음식에 고추장을 넣어 먹을 정도다. 칼칼한 식성과는 달리 누구에게나 마음이 열려 있고 인정이 많다. 그 밖에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타 종교인들의 장점을 물었더니 그제야 긴장을 풀며 시원시원하게 대답한다.
△천주교 수녀: 역시 역사가 깊고 체계적인 종교라서 그런지 수행자로서의 규율과 질서가 엄격합니다. 옷차림과 마음가짐도 반듯하고. 언젠가 학생 수녀에게 비구니가 다기 한 세트를 선물로 주었는데 “답례를 할 수 없어 받지 못하겠습니다”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불교 비구니: 수행을 하면서도 봉사활동과 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이고 자유롭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절제를 잘하는 것 같아요. 재주가 뛰어난 분이 많아요.
△기독교 언님: 함께 활동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기독교의 저력이 저런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철저한 수행이 바탕이 된 것 같아요. 참 반듯한 분들이에요.
△원불교 교무: 타 종교와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인 편이죠. 교단 창립 당시부터 남녀평등이 잘 이루어져 있고, 종단의 위아래에서 다 도움을 줍니다. 다른 종교와의 화합을 당연한 것으로 배우며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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