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실시한 화폐개혁의 실패로 북한 경제의 악화는 필연적이다. 화폐개혁 전후를 비교하면 최근 3개월간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북한 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심각한 것은 이번 사태가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완화해 줄 상품의 공급 확대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인플레이션은 공교롭게도 시장에 상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화폐 공급량을 크게 늘렸고 이로 인해 심리적 공황(恐慌)이 발생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이 인플레이션은 북한 정부나 국민 모두가 자신의 경제를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완화하는 길은 생산재와 소비재 공급을 확대하고 소비심리의 공황 상태를 신속하게 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상품 공급은 화폐개혁 실패로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평양 당국은 (한 방편으로) 암시장에 대해 다시 모르는 척하고 있지만 이번 인플레이션은 북한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도 개혁개방 초기에 급속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있다. 1986∼1988년 3년 동안 중국의 물가는 적어도 매년 16% 안팎씩 증가했다. 3년 동안 물가가 1980년대 초기의 2배로 올랐다. 그럼에도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이 없었던 이유는 1979∼1988년 10년 동안 개혁개방으로 경제 규모가 135% 커졌기 때문이다. 상품공급량은 220% 성장했다. 물가상승 압력이 크게 완화됐다. 오히려 적절한 인플레이션은 중국 경제가 성공하는 중요한 동력의 하나였다. 가격이라는 지렛대로 새로운 생산수요를 창출했고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시장은 또 소비를 자극했다.
이런 역사의 시계추는 다시 북한을 향하고 있다. 평양이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겨내지 못해 옛 동유럽 국가들처럼 붕괴할까, 다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할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인플레이션의 거대한 압력 아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창해온 2012년까지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구호는 공수표가 됐다는 것이다. 평양 정권의 합법성은 처음으로 회의에 직면해 있다.
김일성 주석이 숨진 뒤 16년 동안 국제사회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은 이 기간을 비틀거리면서 견뎌왔다. 암시장 등 지하경제에서만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인플레이션의 이 같은 ‘비국가화’는 평양 당국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정치와 사회 충격을 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화폐개혁이라는 ‘코미디’로 인플레이션은 공개됐고 ‘국가화’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음 번 차우셰스쿠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또 인플레이션이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최후의 일격’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의 붕괴를 막거나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그 과정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주펑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