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지음·그린비
神을 뗀 철학, 주체를 탐구하다
코기토(Cogito). ‘나는 생각한다’는 뜻의 이 라틴어가 근대철학을 열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근대적 주체로 발견했다. 인간을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철학이 신에 대한 믿음을 다지는 데 사용됐던 이전과는 달리 그는 철학을 신앙에서 분리했다.
근대철학은 주체의 독립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주체는 신으로부터 독립됐을 뿐만 아니라 자연세계, 즉 대상과도 분리돼 있다.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주체’라면 목표는 ‘진리’다.
이때 인식주체와 대상이 분리되면서 ‘과연 주체가 대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올바로 인식했다고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대상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은 근대철학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자 균열이었다.
데카르트는 신 대신 과학을 내세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근대철학의 주요 특징인 과학주의가 여기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 역시 어떤 특정 지식이 과학인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부닥친다. 이 문제를 극한까지 탐구한 흄은 주체가 결코 안정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가 해체된 것이다.
칸트는 이 주체를 ‘선험적 주체’라는 개념을 통해 재건한 철학자였다. 칸트는 진리를 주체 내부에서 찾음으로써 근대철학의 균열을 메우려 했다. 진리는 밖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올바르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는 판단형식’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칸트의 사상 역시 주체의 사고 영역을 ‘지금 사고하고 있는 것’으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봉착한다.
저자는 이처럼 근대철학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의 공통점으로 “‘주체’를 여러 요인에 의해 결과물로 구성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든다. ‘주체’를 출발점에 뒀던 근대철학과는 반대인 셈이다. 주체가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는 지식에 의해 구성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철학은 어떤 영역으로 나아가게 될까. 저자는 답으로 “지식을 비롯한 여러 조건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각 사회에 ‘필요한’ 주체가 되어가는지, 혹은 특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주체로 만들어지는지를 연구하는 것”을 제시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