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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노동당이 인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입력 | 2010-03-11 03:00:00

달라지는 노동당 5題

北 소식통들 “화폐개혁 계기로 민심폭발… 곳곳서 서둘러 정책수정”




《최근 북한의 민심이 아주 심상치 않다. 복수의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국에 대한 주민의 불만은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만든다면서 150일 전투를 시작했던 지난해 상반기부터 급격히 높아지다가 화폐개혁을 계기로 폭발하는 듯한 양상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던 때에도 민심은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다. 특히 최근 전국 각지에서 아사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당국에 대한 분노와 야유는 도처에서 노골화되고 있다. 서민들이 많이 먹는 음식 중 한 가지인 인조고기에 ‘선군낙지’ ‘선군탈피’라는 이름을 붙여 선군정치를 야유할 정도다. 술안주로 인기 좋은 인조고기는 콩으로 만들며 어묵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돼지고기 맛이 난다.

북한 당국도 민심 이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강력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모습이다. 전례 없는 공포통치가 시작됨과 동시에 인민의 눈치를 보면서 정책을 과감하게 수정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최근 민심을 의식해 달라지는 노동당의 행보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소개한다.》
[1] 김정일 ‘軍’보다 ‘경제’ 챙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제 살리기의 전면에 나섰다. 6일 2·8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 축하 군중대회에 참석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가 경제분야 군중대회에, 그것도 지방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최근 행보를 보면 놀랄 일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김 위원장의 경제 관련 행보는 급작스럽게 늘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김 위원장은 모두 155회의 공개 활동을 했으며 이중 경제 관련이 67회로 군 관련 행사 36회의 근 2배에 이른다. 올해도 첫 공개 활동을 발전소와 광산 등 경제 관련 분야 시찰로 시작했다. 1990년대 대량아사가 발생했을 때 경제는 외면하고 군부대만 방문해 주민의 원성을 듣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위원장이 경제 문제를 직접 챙기게 되면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다. 민심 안정에는 득이 되지만 경제 살리기가 실패하면 직접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다.

[2] 각종 국가계획 목표 수정

민심은 북한이 2012년에 달성하겠다는 강성대국의 목표까지 수정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당은 지난해 2월 26일 전체 당원들에게 비밀편지를 하달해 2012년까지 전력생산은 776만 kW, 식량 생산은 700만 t으로 끌어올린다는 등의 각종 경제 관련 목표를 제시했다. 이어 주민들에게 ‘비밀편지 관철 계획’은 물론이고 ‘연간계획’ ‘공동사설관철계획’ ‘2012년까지 계획’ ‘150일 전투 관철 계획’ ‘100일 전투 계획’ 등 각종 계획목표를 제시할 것을 강요했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주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주민들은 “강성대국은 말로 하나. 도저히 달성하지 못할 허황된 계획은 집어치우고 배급이나 줘라”고 불평을 공공연하게 늘어놓고 다녔다. 석 달이 지난 지난해 5월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모인 회의에서 “2012년 목표를 전력은 400만 kW, 식량은 600만 t으로 수정한다”는 김 위원장의 말을 전달했다.
[3] 당 간부들에 ‘빈민구제’ 특명

화폐개혁의 후유증으로 최근 아사자와 집을 잃고 방랑하는 노숙인(꽃제비)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지원단체인 ‘좋은 벗들’에 따르면 1990년대에도 아사자가 없었던 신의주에서 지난달 20일 현재 300여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국경도시 신의주가 이 정도라면 내륙 지역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평성 순천 함흥 청진 등 대도시는 물론이고 평양에서도 꽃제비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중앙당은 전국의 당 간부들에게 꽃제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에 앞장설 것을 지시했다고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가 9일 밝혔다. 각 도당 책임비서들에게는 고아원 명예원장 직을 맡겨 오후 5시 이후에는 무조건 고아원에서 생활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나머지 당 간부들도 생활이 어려운 2가구씩 맡아 지원하고 주 1회 이상 빈곤가구들을 방문해 도움을 준 뒤 상부에 보고하라고 했다는 것.
[4] 당 강연회서 부정부패 자성

지난해부터 간부들의 학습모임인 ‘간부학습반’을 대상으로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민심을 틀어쥐고 나갈 데 대하여’라는 주제의 강연회가 여러 번 진행됐다. 이 강연회에서는 노동당을 포함한 간부들의 부정부패와 세외부담(각종 수탈) 사례, 이와 관련된 인민의 반응이 어찌나 과감하고 생동감 있게 언급되는지 참가자들이 “그래도 위에서 현실을 알긴 아는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강연 내용이 외부에 알려질까 봐 강연 교재를 100% 회수하긴 했지만 현실을 과감히 인정하는 모습은 전에 없던 일이라고 북한의 한 소식통은 전했다. 민심이 급격히 나빠진 최근 반년 동안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말단 주민통제 조직인 인민반의 반장을 대상으로 한 회의도 여러 번 열렸다. 김영일 총리의 화폐개혁 관련 사과도 이런 회의에서 있었다. 최고위층이 인민반장들을 상대하는 일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5] ‘여성 바지 착용금지’ 없던 일로

지난해부터 주민의 불만을 자아내는 잘못된 정책에 대해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수정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하반기 노동당에선 여성들에게 바지를 입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추운 겨울에 어떻게 치마를 입고 다니느냐”는 불만이 팽배해지자 몇 달 뒤 없던 일이 됐다. 간부들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맵시 있게 입고 다니는 것은 통제하지 말라”는 김 위원장의 ‘말씀’을 전달했다고 한다. 또 비슷한 시기에 간부로 있다가 퇴직한 노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술을 마시며 당 정책을 비난한다고 해 친구나 직장 동료끼리 모여 술을 마시지 말라는 노동당의 지시가 하달됐다. 이에 “일제가 조선사람 3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고 탄압하더니 지금도 똑같다”는 불만이 높아지자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인민들이 대동강이나 모란봉에서 노는 것은 통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평양의 한 소식통이 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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