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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500년 유랑의 恨 아는듯 모르는듯

입력 | 2010-03-12 03:00:00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2009년 현재 18개국 10만7857점에 이른다. 이 중 60%는 일본에 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가 마련한 ‘500년 만의 귀향-일본에서 돌아온 조선 그림’전은 일본으로 반출됐던 고서화와 다시 만나는 자리다.

전시장에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말기까지 왕유, 이백 등 중국 문인과 관련된 고사도(故事圖) 10점, 동물 그림 20점이 걸려 있다. 이 갤러리에서 지난해 열린 ‘한국 근대 서화의 재발견’전에 이어 두 번째로 일본에서 돌아온 옛 그림을 공개하는 전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일본으로 옮겨진 고서화를 수집해온 학고재 우찬규 대표는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은 길게는 사오백 년, 짧게는 수십 년의 유랑 신세를 마치고 귀향한 작품”이라며 “집 나간 자식의 귀가만큼 반갑다”고 말했다. 한국 고서화 개인컬렉션으로 유명한 유현재(幽玄齋) 컬렉션 중 일부로 일본이 좋아하는 그림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대개는 처음 공개된 작품으로 국내에 있는 그림보다 잘 보존돼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말, 호랑이, 매 등을 소재로 한 동물화는 상서로움을 기원하는 그림이다. 공재 윤두서를 비롯해 양기훈 안중식 김윤보의 그림도 있지만 상당수는 작가 미상이다. 호랑이해를 맞아 전시장 앞머리에는 호랑이 그림이 자리한다. 우 대표가 2년 전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한 ‘맹호가족도’. 암수 호랑이와 새끼를 그린 작품으로 호랑이 가족의 나들이 풍경이 정겹다. 또 다른 작품엔 앞발로 표범을 겁주며 새끼를 보호하는 듬직한 엄마 호랑이가 있다.

15,16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목도’는 말을 소재로 한 조선시대 회화 중 빼어난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서울 마장동의 살곶이 풍경을 담은 채색화로 동물의 묘사나 배경을 보면 고구려 고분 벽화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상화된 세계나 이상적 인간상을 소재로 한 ‘고사도’에선 유교를 숭상한 동아시아 지식층의 미의식과 취미에 공통점이 있음을 드러낸다. 비단에 그린 ‘풍림 정거도’는 연대가 가장 오래된 작품. 그 옆에 걸린 ‘탄금도’와 ‘누각 산수도’는 각기 한지와 모시에 채색한 작품이다.

이 전시를 기획한 명지대 이태호 교수는 “귀향한 조선시대의 회화 기획전은 한중일 문화의 공통분모를 만난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며 “산수화 ‘송파휴금도’와 ‘풍림 정거도’ 등은 빈자리가 많은 조선 전기 회화사를 보완해줄 귀중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4월 25일까지. 02-720-1524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