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할 수 있으면 날 잡아봐).'
7일 오후 미국 로스앤젤리스 포시즌 호텔. 스위트룸에 투숙한 쿠바 출신 갑부 호세 파눌 씨는 엘리베이터에서 한 훤칠한 호텔 직원과 인사를 나눴다. 유창한 스페인어에 재치 넘치는 농담. 파눌 씨는 친절한 직원 덕분에 기분이 유쾌해졌다. 그날 저녁, 그 직원은 방까지 찾아와 에어컨도 점검하며 보살펴주고 돌아갔다. 이 호텔에 묵길 잘했단 만족감에 흐뭇해진 순간, 갑자기 아내가 사색이 된 채 소리쳤다. "여보, 현금과 보석이 몽땅 사라졌어요."
현대판 괴도 뤼팽의 출현인가. 미국 LA에서 근사한 외모와 변장 솜씨를 가진 도둑이 8개월가량 수십 차례에 걸쳐 100만 달러가 넘는 금품을 훔쳐 경찰의 속을 끓이고 있다.
LA타임스는 "리코의 범행도구는 매력적인 외모와 능숙한 변장, 사람을 홀리는 말솜씨"라고 전했다. 지난해 8월 메리어트 호텔의 첫 범죄부터 범상치 않았다. 호텔에 묵고 있던 한 멕시코 프로축구팀은 로비에서 자신들의 운동복을 입은 한 팬과 포옹을 나눴다.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떠나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호텔직원에게 자신을 팀 동료라 소개한 팬은 열쇠를 받아들고 유유히 방으로 올라갔다. 선수들이 돌아왔을 땐 이미 리코가 모든 귀중품을 쓸어간 뒤였다. 윌셔 그랜드 호텔 사건 땐 직원에게 투숙 중인 살사밴드 연주자라며 음악CD까지 선물하고 열쇠를 받아갔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리코는 대체로 특급호텔 등 경비가 철저한 곳에서 금품을 털어왔다. LA스테이플센터에선 프로농구팀 LA클리퍼스의 매니저로 꾸미곤 시범경기 상대인 이스라엘 프로농구팀 라커를 털어간 적도 있었다. 모두 출입통제가 엄격했지만 리코는 손쉽게 드나들었다. 특히 이번 포시즌 호텔 사건은 경이로울 정도다. 당시 호텔은 모건 프리먼과 로버트 듀발 등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여한 특급 배우들이 투숙한데다 테러 경보까지 내려져 보디가드와 경찰, CIA가 이중삼중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폴 버논 LA경찰국장은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리코는 단독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알려진 사건 말고도 훨씬 많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리코는 LA경찰본부에서도 노트북을 포함한 몇 가지 물건을 훔쳐간 정황이 최근 드러났다. 버논 국장은 "확실히 자신의 게임에 능숙한 영리한 인물인 건 맞지만 그가 범죄자란 사실은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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