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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희망의 바그다드, 절망의 평양

입력 | 2010-03-12 20:00:00


2003년 이전의 북한과 이라크는 닮은꼴이었다. 장기집권 독재자가 있었고 국민은 자유를 박탈당한 채 신음했다. 두 나라 권력자는 국제사회와 무모한 대결을 계속해 외톨이 신세를 자초했다. 그런데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대통령 선거에서 언제나 100%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뒤질세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예외 없이 100% 득표를 얻어냈다. 이라크와 북한에서 선거는 독재자를 위해 국민의 지지를 조작해내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라크 국민의 용감한 홀로서기

2003년 미국의 공격으로 후세인이 제거된 뒤 이라크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7일 실시된 총선은 이라크가 어느덧 중동지역 최고 수준의 민주국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줬다. 선거를 앞두고 이라크 내 알카에다와 반정부 무장단체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표를 막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반(反)총선세력은 박격포 로켓포 폭탄으로 투표 참가자와 투표소를 공격해 38명의 목숨을 앗았다.

그러나 1900만 명의 이라크 유권자 가운데 62%는 죽음을 무릅쓰고 투표장을 찾았다. 유권자들은 “무장세력의 공격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를 꺾지는 못할 것”이라며 투표장으로 몰려갔다. 많은 사람이 “내가 집에 머물면 이라크는 더 위험해진다”는 생각으로 용감하게 집을 나섰다. 이라크 국민에게 이번 총선은 인종과 종교적 갈등을 넘어 국가적 화해를 앞당기는 기회였다. 선거 참여는 분쟁을 무기가 아닌 정치로 해결하려는 것이라는 인식도 커졌다. 이라크를 주시하는 외부 관찰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변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지도자들은 앞 다투어 이라크인의 용기를 찬양했다.

이라크의 변화는 정치권에서도 두드러진다. 2005년부터 총리로 재임 중인 시아파 출신 누리 알 말리키는 이번 총선을 위해 시아파와 수니파를 섞은 ‘법치국가연합’을 결성했다. 그는 종교적 뿌리에서 벗어나 이라크 전체를 위한 민족주의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2005년에는 총선을 거부했던 수니파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이라크에 올해와 내년은 결정적인 시기다. 현재 이라크에는 10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8월 말까지 5만 명의 미군 전투병이 철수하고 내년 말에는 모든 미군이 이라크를 떠난다. 과연 미군의 보호 없이 신생 민주국가 이라크가 홀로 설 수 있을까. 이라크 국민은 이번 총선 참여로 그런 의문에 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국민은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비록 많은 피를 흘렸지만 극심한 종교적 인종적 대결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도 커졌을 것이다.

독재는 비극으로 끝난다

후세인의 경우처럼 독재자는 예외 없이 비극으로 끝난다. 북한의 김 위원장도 해피 엔딩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라크처럼 외세의 개입으로 무너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불행과 혼란이 닥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북한 내부에서 폭발 징후가 늘어나고 있다. 여건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외자유치를 하겠다며 여기저기 손을 내밀고, 세계화 시대에 외부 세계와 휴대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주민을 총살하는 시대착오적 대응을 하는 집단이 북한 정권이다. 북한 집권세력이 스스로 얼마나 절박한 상태에 몰려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독재자가 사라지면 북한도 필연적으로 이라크처럼 민주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독재자의 집권이 길면 길수록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라도 이라크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홀로서는 과정이 북녘 동포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소망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