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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나영이 아버지

입력 | 2010-03-15 03:00:00

“죄책감 없는 유전자도 있더군요… 김길태도 그럴겁니다”

“조두순에 물린 얼굴 10번째 성형수술… 분노도 원망도 가슴에 다 묻어
집이 좁아 사고후 독방쓰고 싶어하는 아이 소원도 못들어 주는게 미안”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나영이’(가명·10) 아버지(57)는 몇 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분노 때문이라기보다 무력감 같아 보였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 생각 안 해요. 남의 가슴 무너지는 것보다 내 가슴 무너지는 게 낫다, 그렇게 다짐하며 살아왔고 애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기자는 신문에서만 보던 나영이 사건의 전모를 아버지로부터 육성으로 전해 듣자 새삼 어이가 없었다. “조두순(범인·12년 선고받고 복역 중)이 미워 어떻게 견디느냐”는 기자의 잔인한(?) 질문에도 선한 인상의 그는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담배 연기에 실어 보냈다.

나영이네 네 식구가 사는 곳은 경기 안산시의 허름한 주택가였다. 오전인데도 어두운, 전세금 4000만 원짜리 56m²(약 17평) 좁은 다세대주택에서 기자와 마주 앉은 나영이 아버지는 “‘사건’ 이후 ‘독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딸 소원도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나영이를 데리고 병원 갔다가 나오는 길이었어요, 김길태가 잡히던 날이었지요. 뉴스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우리 큰딸도 꼭 죽은 유리 양 나이인데. 차 뒷좌석에서 자고 있던 둘째 나영이가 깨더니 ‘아빠 왜 울어?’ 해요. 언니(유리 양) 불쌍해서 운다고 했더니 ‘아빠,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하더군요.”

평소에도 사리분별이 분명했던 나영이는 ‘그 일’ 이후에는 아빠를 위로할 정도로 철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전 부산에서 유리 양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에는 아빠에게 대들기도 했다. “‘큰 사건이 또 터졌는데 왜 못 잡느냐, 지난번 우리 집에 국회의원들까지 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왜 어른들이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따져 묻는데 해줄 말이 있어야지요.”

나영이 아버지는 “우리 애는 살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싶다가도 잊을 만하면 똑같은 일이 터져 마음을 후벼 판다”고 했다. 그에게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난다고 보느냐”고 묻자 “못살고 가난한 사람들 일이라 그만큼 세상 사람들 관심이 덜 절박한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좀 살 만하고 여유 있는 분 애들이 사는 곳은 범인들이 노리지도 않아요. 그 사람들(범인)이 얼마나 지능적인데요. 어린이, 청소년을 겨냥한 성폭행이나 살인은 교통사고처럼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범죄가 절대 아닙니다. 조두순은 우리 집에서 400∼500m 떨어진 상가에서 9개월 동안 경비 일을 했어요. 집도 그 근처였고요. 동네를 너무 잘 알아 ‘먹잇감’들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더구나 사고현장은 아버지인 자신도 늘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로, 일이 몰리면 집에도 못 들어가는 날이 많고 아내도 식당 일과 가사 도우미를 하느라 귀가시간이 불규칙해 늘 딸들이 하교할 때쯤이면 꼬박꼬박 휴대전화로 확인하고 혹여 학원에서 늦는 날이면 원장에게 귀갓길 좀 보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해둔 터였다. 설마 이른 아침 등굣길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날도 아내가 먼저 아침 일찍 일을 나가 애들 등교를 제가 시켰죠. 한 10시쯤 되었을까. 차를 타고 일터로 가고 있는데 지구대 소속 경찰이라면서 대뜸 ‘딸이 강간을 당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날부터 나영이 가족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어 이미 고려대병원으로 옮긴 직후였어요. 응급실에 누워 있는 아이 얼굴이 엉망진창이에요.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두 눈이 딸기를 박아놓은 것 같고 입은 뒤틀린 데다 얼굴은 이빨 자국에 파여 가지고…(한숨). 지금도 레이저 성형수술을 10회째 하고 있어요. 머리카락으로 아무리 가려도 흉터가 보이니까 아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조두순은 기절한 나영이를 버려두고 수돗물까지 틀어놓고 가버려 20, 30분만 더 지났으면 저체온증으로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발견 당시 하의는 벗겨지고 웃옷 파카는 흥건히 젖은 상태였다.

나영이 아버지는 “어른들에게 공손하라고 가르친 게 내 최대 실수였다”고 자책했다. 조두순이 학교로 진입하는 골목길 초입 교회 앞에서 나영이에게 ‘이 교회 다니니?’라고 먼저 말을 건 순간 무시하고 도망치기만 했어도 화(禍)를 면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범인은 나영이가 “다른 교회 다니는데요”라고 말하며 멈칫 선 순간 어린 것의 입을 틀어막고 번쩍 낚아채 교회 1층 화장실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8시간 대수술 끝에 겨우 정신을 차린 딸에게 경찰이 ‘범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니까 애 엄마가 힘들면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도리어 ‘엄마, 범인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지, 내 친구들 또 아프게 하면 어떻게 해’ 하는 거예요.”

나영이 가족을 더 절망시킨 것은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조두순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이었다. 조두순은 옷과 운동화에서 나영이 혈흔과 DNA가 나왔는데도 ‘기억이 안 난다’ ‘모른다’고 발뺌했다. 급기야는 교도소에서 머리 모양을 바꾸고 안경까지 끼면서 위장했다. 판사에게는 90도 각도로 절을 한 반면 자신이 나영이 아버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싸늘한 표정으로 대하던 그가 최후진술에서까지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고는 ‘세상에는 유전자에 죄책감이란 게 없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절망했다고 한다.

“김길태의 IQ가 86이라고 하는데 저는 믿기질 않습니다. 지능지수가 낮은데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을 보름씩이나 따돌립니까. 김길태도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범행을 부인한다고 들었는데 조두순과 똑같은 행태예요. 그 사람들은 법을 역이용하고 자기 범죄를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꿰뚫고 있는 도사들입니다.”

나영이 아버지는 며칠 전 나영이가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해 깜짝 놀랐다. 공부해서 유명한 사람이라도 되면 ‘그 나쁜 아저씨’가 자기를 찾아내기 쉬울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쑥불쑥 일어나는 두려움이 아이의 마음을 할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저씨가 앞으로 12년을 살고 나오면 나이 70이 되어 나영이를 찾아올 힘도 없다며 안심시켰어요. 하지만 불안하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수감되어 있는 성범죄자가 5000여 명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2, 3년이면 절반 이상 사회로 쏟아져 나옵니다. 법은 뒷전인 상태에서 쓸모없는 관용을 그들에게 베푼다면 제2, 제3의 사건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언니와 함께 쓰는 나영이 방은 이층침대 위에 각종 인형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 여느 여자 아이들 방과 다르지 않았다. 창문을 칠판 삼아 언니와 낙서를 한 것이나 달력에 ‘엄마 생일’이라고 적어 놓은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해맑은 동심이 읽혔다. 그러나 옷장 위에 놓인 아기용 기저귀, 수북한 배변주머니 더미에서 나영이가 겪고 있는 고통이 고스란히 읽혔다.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서 항문기능 복원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배변주머니는 혼자서 못 바꾸니까 수술을 하긴 했지만 이제 또 다른 시작입니다.”

그는 “그동안 누구를 원망하고 어쩌고 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나영이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가장(家長)으로서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자기 최면 같아 보였다. 추위가 매섭던 날 얇은 체육복만 입고 기자를 배웅하는 그에게 “춥지 않냐”고 했더니 “속에 열불이 나서 추운 줄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가족 생각하고, 딸 생각해서 분노와 원망을 가슴에 묻고 있을 뿐”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 뉴스는 아동성폭력 가해자들의 처벌을 강화하는 관련 법안 20여 건이 국회의 태만으로 상임위나 법사위에 묵혀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봄이 왔지만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낮이면 일터로… 텅 빈 골목
서민 동네를 노리는 범인들


8세 소녀가 이른 아침 등굣길에 조두순에게 납치당한 골목길 초입. 골목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잘 모를 정도로 한산해 조두순이 치밀하게 시간대와 장소를 골랐음이 느껴진다. 안산=허문명 기자

11일 오후 경기 안산시의 한 주택가. 다세대 주택과 고시원, 원룸 밀집지역인 이곳은 곳곳에 ‘월세 구합니다’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기존 주택을 개조하면서 다세대주택으로 만드는 공사 현장도 많아 어둠이 내리면 인적이 드물어 보일 사각지대가 흔하게 띄었다. 이미 몇몇 주차장은 비행청소년들의 우범 장소가 되고 있다고 한 주민은 전했다.

골목도 마찬가지였다. 나영이가 사고를 당한 골목도 5분 거리인 학교를 가려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곳으로 골목만 지나면 바로 대로였지만 골목 안에서 사고를 당하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발길이 드문 곳이었다. 사고 현장인 화장실이 있는 교회 1층 문은 검은색 선팅지가 짙게 발라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교회도 이미 개점휴업 상태가 된 지 오래였다고 한다. 범인 조두순은 치밀하게 시간과 장소를 골라 어린 소녀를 노렸음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골목 끝에 대형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것은 지난해 말. 나영이 사건으로 세상이 온통 시끄러워진 뒤였다. 나영이 아버지는 “그동안 CCTV를 달아달라고 몇 번이나 동사무소나 구청에 하소연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성의 있게 응답한 사람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 현장도 철거가 진행 중이어서 빈집이 많은 재개발지역이었다. ‘나영이 사건’ 현장 역시 생계로 바쁜 부모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동 청소년들이 빈집과 난개발로 미로가 되어버린 골목길에서 ‘악마의 손아귀’에 희생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아동성폭행 문제는 단지 정신이상자의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개발의 뒤안길에서 밀려나는 빈곤 확대가 낳은 또 다른 그늘이었다.

:나영이 사건:
2008년 12월 경기 안산시에 사는 조두순(58)이 8세 소녀를 아침 등굣길에 납치, 성폭행한 후 목을 졸라 실신시키고 소녀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든 사건이다. ‘조두순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당시 심리치료를 받았던 나영이는 조두순을 그린 그림에서 ‘납치죄 10년, 폭력죄 20년, 유기 10년, 주머니 이렇게 달게 한 것, 인공장치 달게 한 것 20년 합해 60년의 징역을 살게 해야 한다. 특히 벌레하고 평생을 감옥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하고 항상 흙이 들어간 밥을 먹어야 한다’고 써 넣었다. 2009년 9월 24일 대법원은 조두순에게 12년형을 선고하면서 7년간 전자발찌를 차야 하며 5년간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유리 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 범행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