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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윤종구]오자와의 돈, 권력의지, 꿈

입력 | 2010-03-15 03:00:00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일본 민주당 간사장의 최근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지난해 8·30 총선에서 정권교체를 실현해 필생의 꿈이던 최고 권력을 쥐었고 전방위 개혁을 주도하다 불법 정치자금 의혹 사건에 휘말린 뒤로는 눈에 띄게 힘이 빠졌다. 사임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7월 참의원 선거 결과가 정치적 부활의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고질적 정치 병폐인 금권정치에 깊숙이 발을 담갔던 오자와에 대해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가 한국에 우호적이고, 김치를 여느 한국인보다 더 좋아하고, 재일동포를 포함한 외국인 영주자 지방참정권 문제를 주도해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자와는 그대로 눌러앉아 있기만 하면 확실히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자민당 황태자’ 자리를 마다하고 1993년 집권당을 뛰쳐나갔다. 이대로 가다간 일본에 희망이 없다는 소신이 그를 가시밭길로 이끌었다. 이때 그는 일본의 미래 청사진을 조목조목 밝힌 ‘일본개조계획’을 국민 앞에 제시했고 그 실현을 위해 권력을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이듬해 잠시 비(非)자민 연립정권을 탄생시켰을 뿐 대부분의 기간은 순탄치 않았다. 오자와는 신생당 신진당 자유당을 자기 손으로 만들고 스스로 해체시키면서 끊임없이 권력을 도모했으나 수십년 이어져온 자민당 독점정권의 뿌리는 깊었다. 지난 17년간 일본 정치권 이합집산의 중심에는 늘 오자와가 있었고 이 때문에 그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판을 깨는 정치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붙었다. 숱한 창당과 합당, 세력 유지에는 막대한 정치자금이 들어갔다.

한편으론 오자와가 늘 뭔가를 만들고 부수며 변화할 때마다 야당은 힘을 불렸고 결국 지난해 정권교체의 원동력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오자와가 없었다면 정권교체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했던 16년 역정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일본을 자신의 신념대로 개조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펼치기 위해선 권력이 간절했다. 정치구조상 꿈은 세력을, 세력은 돈을 필요로 했다. 오자와 정치인생을 꿰뚫는 핵심은 꿈과 권력의지, 정치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 정권이 표방하는 관료개혁, 정치주도, 내각과 여당의 정책일원화, 총리관저 시스템 강화, 대등한 미일관계, 아시아태평양 중시 외교 등은 모두 오자와가 17년 전 일본개조계획에서 밝혔던 청사진 그대로다. 중국의 부상을 내다보고 일찍이 중국에 공을 들여 두꺼운 파이프라인을 구축한 사람도 그다. 오랜 세월 꿈과 권력을 향해 일로매진한 결과다.

그런데 세력 유지의 원천인 ‘돈’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개혁은 깨끗한 손으로 해야지 때 묻은 사람이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개혁을 외치며 권력을 읍소하던 사람들이 막상 권력을 쥔 후에는 앞 다퉈 타락의 길로 빠지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격했다. 권력을 잡기 전에 깨끗해 보였던 건 단지 그때껏 부패와 결탁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셈이다. 권력과 도덕의 문제는 동서고금의 난제 중 하나다. 그렇더라도 오자와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감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 많은 우리 정치인 중에 10년 후, 20년 후 국가의 설계도를 국민에게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정치인, ‘꿈’과 ‘권력의지’를 동시에 불태우는 정치인이 과연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