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되는 순간 공부를 위해 여자이길 포기하는 친구가 많아요. 머리감는 시간이 아깝다며 일주일동안 머리를 감지 않는 경우는 차라리 나은 편이죠.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깝다며 1000원짜리 햄버거를 입에 구겨 넣은 채 도서관으로 뛰어가는 여자친구도 있어요. (장모 군)
남녀공학에 다니는 고3 장모 군(18·서울 강동구)은 요즘 주위 여학생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열공’(열심히 공부한다는 뜻의 신조어)하는 건 이해하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란 생각이 들만큼 ‘망가지는’ 여자친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장 군은 “심지어 등교 때부터 학교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거나, 친구들에게 보여줄 노트와 자신이 볼 노트를 따로 쓰는 여학생도 있다”면서 “여학생들은 참 ‘독한’ 것 같다”고 했다.
장 군의 말마따나 ‘독하게’ 공부하는 여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여학생들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남학생들도 많아졌다. 하루 종일 남자친구 생각에 공부를 못하는 여학생? 그건 이젠 역사 속 얘기다. 요즘 중고생 커플 사이에선 오히려 남학생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 이 군이 준비한 것은? 학원에서 나눠준 프린트 한 장이 전부. 필통도 없이 가방에서 검정색 펜 한 개와 샤프 한 개를 꺼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공부만 한 지 두 시간. 멍하게 벽만 쳐다보던 이 군은 ‘놀러가자’는 말을 하기 위해 여자친구에게 웃으며 “재미있어?”라고 운을 떼어 봤지만, 하 양은 “재미로 공부하니? 넌 왜 공부 안 해?”라며 쏘아붙일 뿐이다.
“어떻게 남자친구가 눈앞에 있는데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펜은 왜 그렇게 또 많은지….”(이 군)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쉬는 시간이면 농구, 축구를 한다며 자리를 비우는 남학생들과 달리, 여학생 교실은 조용히 책을 보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그 결과일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9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1984년 이래 처음으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82.4%)이 남학생(81.6%)을 앞섰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 사이에 형성되는 ‘이상한’ 라이벌 의식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같은 학교에 진학한 박모 군(18·경기 고양시 일산구)과 강모 양(18·경기 고양시 일산구). 공부 잘하는 강 양의 라이벌은 반 1등인 진모 양(18)이다. 평소 박 군에게 “진○○이가 반에서 1등일 뿐이지 전교등수는 별로야” “알고 보니까 걔 수학은 되게 못 하더라”라고 말하며 진 양을 깎아내리는 강 양. 하지만 박 군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강 양이 진 양과 함께 있을 땐 돌연 둘도 없는 ‘절친’(절대 친한 친구의 줄임말)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친한 것과 시험에서 져서 억울한 것은 분명 별개 문제죠. ‘의리’를 외치면서 함께 PC방 가고, 축구 농구하면서 공부할 시간을 함께 내버리는 남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건설적인 게 아닐까요?” st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