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서양철학사/안광복 지음/웅진 지식하우스“그래 이건 내가 했던 고민이야”
《“짝사랑에 마음 태운다면, 키르케고르가 어떻게 연애했는지 알아보자. 교회 나가라고 들들 볶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벌컥 인다면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어라. 철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아, 그래! 이건 내 고민과 똑같아!’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때가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다.”》
철학 관련 해설서나 교양서적은 쉽게 풀어 썼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게 술술 읽히는 것은 드물다. 여전히 어렵고, 잘 읽히지 않아 도중에 포기하거나 나가떨어지기 쉽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다르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 이외에는 처음으로 철학 책을 든 이들이라 해도 무리 없이 읽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인 저자는 독자의 눈높이를 잘 맞춰나간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현대 지성까지 서양 대표 철학자 38인의 생애와 철학 개념들을 간추려 소개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철학자들의 생애와 그들의 철학을 따로 보지 말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초 기질이 엿보이는 니체의 초인사상은 그가 어린 시절 온통 여자들 틈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 개론서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우스꽝스러운 일화들이 수록됐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왕따 철학자’ 스피노자는 스스로 왕따가 된 수도승 같은 철학자였다. 유대사회의 촉망받는 엘리트이던 스피노자는 유대교 경전이 지닌 모순에 회의를 품고 유대교 전통보다 새로운 사상에 심취한다. 유대 교회는 그를 회유하기 위해 거액의 연금을 제시하기도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도 해보지만 스피노자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그는 ‘태만과 무신론 사상’ 등을 이유로 파문당하고 만다. 유대교회가 스피노자에게 내린 파문 선고 일부를 인용해 보면 이렇다.
인격신의 개념 대신 세계가 곧 신이며 정신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했던 스피노자는 이후 평생 하숙방을 전전하며 렌즈 가는 일로 생계를 꾸렸다. 삶과 행동이 곧 철학이었던 이 철학자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에티카’ 등 그의 저작들 역시 새롭게 읽힌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괴짜 같은 삶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철학계를 큰 무대에 비유한다면 (쇼펜하우어는) 주연배우이고 싶어 했지만 결국 밤무대 가수 수준에서 삶을 접어야 했던 사람”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철학의 숨겨진 황제’라고 생각했으며 후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리라고 믿었다.
베를린대 동료 교수였으나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스타 철학자였던 헤겔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허풍스러운 헛소리에 불과한 철학’ ‘정신병자의 수다, 요술쟁이의 주문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어쩌면 인간,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처럼 높은 기대치가 지독한 혐오와 염세주의로 이어지지는 않았을까.
시간관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준 나머지 하인을 알코올의존증 환자로 만들었던 철학자 칸트, 세상의 뜨거운 반향을 기대하며 펴냈던 야심작 ‘인간본성론’이 인쇄기에서 나오자마자 ‘죽은 채 떨어지는’(폐기처분되는) 장면을 목도해야 했던 청년 흄 등 인류 지성사를 수놓았던 철학자들과 각양각색의 삶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