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간담회가 끝난 후에 기획재정부 대변인이 아마도 장관이 겪었을 곤혹스러움에 대해 뒤늦게나마 보상을 해야겠다는 충정에서였던지 특정 기자의 질문이 적절치 못했다고 논평을 했고 이를 전해들은 당사자가 험한 욕설로 대응한 데서 시작됐다. 기획재정부는 그에 대한 보복 조치로 성미 고약한 기자의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에 대해 공보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고 그 일의 반향으로 이번에는 한국주재 외신기자 사회 전체가 자기들의 처지에 대한 불안과 불만으로 들썩이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이번의 조처가 부적절한 질문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정부 대변인에게 욕설을 한 데 대한 제재이며 정부 대변인에 대한 무례는 우리나라에 대한 모욕이라는 논리로 결정을 정당화했다. 설사 정부 부처의 대변인이 성미 고약한 기자 개인에게서 못 들을 욕설을 들었다고 해도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관하는 해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신문에 공보서비스를 중단하는 일 외에 다른 대응방도가 없었을까. 또한 룸살롱에 관한 외신기자의 질문이 부적절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당사자가 듣는 자리에서 항의조의 이야기를 한 대변인의 처신에는 문제가 없었을까.
공직자에게 부적절한 답변은 있을 수 있지만 기자에게 부적절한 질문이란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유도질문을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이유 가운데 하나이며 그런 일에서는 국경이 없다.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룸살롱에 다니는 관행 때문에 여성의 사회진출이 저해 받지 않는가, 룸살롱 접대비에는 면세혜택 없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질문은 부적절하지 않고 지극히 신선하다.
우리 기자들이 감히 못하는 질문을 외국인이 대신 해줌으로써 사회정화 가능성을 높여준 데 대해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 질문을 부적절하다고 단정했기 때문에 대변인이 모욕을 당한 것뿐이지 결코 대한민국이 모욕당한 것이 아니다. 욕설이 심하고 성미가 고약하다면 혹시 특파원의 교체를 요구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기관 자체에 대한 공보서비스 중단은 과잉반응이고 기획재정부의 월권으로 비칠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치부가 드러나기를 원치 않고 나라도 마찬가지다. 룸살롱은 우리의 건전치 못한 성 문화와 관행 문화의 대표적인 표상이고 자랑스러운 것이 못 된다. 하지만 덮어 놓는다고 불미스러운 현실이 감추어지지는 않는다. 윤 장관은 외교적으로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했다고 보지만 사실 하위직 여성 진출의 증가가 룸살롱이 내포하는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과 공직사회의 숨겨진 비리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좀 더 많은 여성이 고위공직에 진출하면 공금에서 지원하는 불필요한 회식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증명되고 있다. 허술하게 공금을 쓰는 것을 자국에서 용납 못하는 외국 기자들이 우리 기자들은 관행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들에게는 분명히 비리로 보일 일을 지적하고 싶어 하는 것은 비단 룸살롱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미처 못 짚어내는 우리의 문제점을 들춘다 해서 감정적 민족주의로 대응한다면 그것은 열등의식의 전도된 표현일 뿐이지 진정한 애국심도 민족적 긍지도 아니다.
어두운 관행 들여다보는 계기로
자기 상관을 보호한다는, 언뜻 보기에 아름다운 취지에서 신랄한 질문을 가로막으려 한다면 득보다 실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도 우리 공직사회에서는 아직도 기자회견이고 간담회고 미리 짠 각본에서 벗어나면 큰일 난 듯 당황하는 대변인이나 보좌관이 많기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에 앉는 사람이 점점 더 현실과 멀어져 민심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는 폐단이 크다 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이라고 무례를 용납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번의 작은 일에서도 여러 가지 교훈을 읽어낼 수 있듯이 외신 기자의 존재는 신선한 공기를 들여보내는 창구와도 비교될 수 있다. 그들의 불평과 불만에는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