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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방형남]반성하는 경찰청장

입력 | 2010-03-18 03:00:00


10만 경찰의 총수인 강희락 경찰청장은 9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사건 사고의 홍수 속에 바람 잘 날 없는 경찰을 지휘하며 1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냈다면 조촐한 축하행사라도 함 직하다. 2년 임기의 절반을 넘긴 시점의 개인적 소회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경찰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의 관점에서는 그가 지휘지침으로 정한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경찰’이 얼마나 구현됐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강 청장이 애초에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축하행사는 물 건너갔다. 부산에서 실종됐던 여중생이 숨진 채 6일 발견돼 비상이 걸렸고, 나흘 뒤 피의자 김길태 씨가 체포되기는 했지만 경찰에 부실 수사의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강 청장은 그래서 축하모임 대신 그제 반성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국 지방경찰청장 회의를 소집해 여중생 피살사건 대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찰은 입이 100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강 청장은 “막을 수 있는 (여중생 피살)사건을 못 막아서 너무 아쉽다. 신뢰와 존경받는 경찰이 과욕이라면 욕이라도 덜 먹는 경찰이라도 되자”며 부하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경찰에는 시키는 것이 아니면 안 한다는 자세가 유전인자로 흐르고 있다”며 “대충 수사하는 경찰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강 청장의 질책에 놀란 경찰은 어제 어린이 청소년 대상 성범죄 전과자 관리를 강화하는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강 청장이 거론한 ‘시키는 일만 하는 경찰’에는 경찰 수뇌부도 포함된다. 경찰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여중생 살해범을 검거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뒤늦게 대대적인 체포작전에 돌입했다. 지난해 경기 고양시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 대처와 닮은꼴이다. 당시에는 이 대통령이 일산경찰서에 직접 가서 질책한 다음 날 용의자를 체포했고 이번에는 대통령 지시가 있은 지 이틀 만에 김 씨를 붙잡았다. 경찰조직 전체가 강 청장의 반성이 여론의 질타를 모면하기 위한 면피용이 아님을 행동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경찰, 범죄자는 두려워하는 경찰, 그런 멋진 경찰을 우리는 보고 싶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