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생도 다시 찾는 대학가 맛집들
《과거에는 넉넉한 인심만으로도 대학가 명물 맛집으로 꼽힐 수 있었지만 요즘 학생들은 깐깐하다. 맛은 기본이고 서비스와 위생도 평가 항목에 들어간다. 수십 년 전부터 맛집으로 손꼽혀 온 터줏대감들도 “종업원들이 친절하지 않다”느니, “위생 관념이 부족하다”느니 야박한 품평을 받기 일쑤다. 인터넷 공간에서 맛집 블로거까지 활약하면서 맛집 대열에 들어서기가 더 힘들어졌다. 게다가 대학가 주변은 먹을거리 홍수일 정도로 음식점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그 대학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맛집은 따로 있다. 재학생들은 물론 졸업생들의 발길까지 다시 잡는 요즘 대학가 맛집을 돌아봤다. 입맛과 추억을 부르는 곳들이다. 》
○ 성균관대 앞 ‘페르시안 궁전’
페르시안 궁전은 2002년 문을 열자마자 매운 카레로 입소문을 탔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이국적 카레전문점이라 주목도 받았다. 이란 출신의 샤플 사장은 “1990년대 초 한양대 의대로 유학을 왔다가 친구들에게 카레를 해주는 재미에 빠져 음식점까지 내게 됐다”고 소개했다. 부업처럼 시작한 음식점은 계속 규모를 늘려 120좌석으로 커졌고, 지금은 지하공간까지 확장하기 위해 개조작업 중이다.
15일 찾은 페르시안 궁전에는 남학생들 무리가 적지 않았다. 졸업 후 처음 들렀다는 97학번 기호상 씨는 “학생에게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라 특별한 데이트 때나 왔는데, 지금은 남학생들끼리도 부담 없이 오는 것 같다”며 세대차이를 확인했다.
▽가격=10여 종의 카레라이스 한 접시가 8000∼1만1000원 선.
▽위치=서울 종로구 명륜2가 121-1. 성균관대 정문 바로 맞은편.
○ 연세대 앞 ‘털보고된이’
▽가격=고갈비 백반 등 각종 생선구이가 7000∼8000원 선.
▽위치=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53-8. 창서초등학교 인근.
이젠 부부싸움 뒤 속풀러…
싸고 맛있는 집 생각나면…
○ 신촌 기차역 앞 ‘완차이’
이 집 역시 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맛 품평 덕에 맛집 대열에 올랐다. ‘변함없는 맛’이 이곳의 미덕이다. 14일 부부 동반 모임으로 완차이를 찾았다는 신원일 씨(31) 일행은 “다들 인근 대학 출신인데, 술 한잔 생각나고 매운 안주가 생각날 때 같이 온다. 맛이 변함이 없어 추억을 얘기하기 좋다”고 추천했다. 외관은 일반 중식당의 모습으로 깔끔한 인테리어나 친절한 서비스를 생각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별미를 먹고 싶을 때 그만이다.
▽가격=아주 매운 홍콩 홍합 2만3000원, 사천 탕수육 1만5000원 등.
▽위치=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5-35. 신촌 기차역 맞은편 골목가에 위치.
○ 서울대 앞 ‘성민 양꼬치’
테이블에 활성탄이 세팅되고, 그 위로 꼬치가 올라왔다. 주방에서 한 번 익혀져 나온 양꼬치는 숯불 위에서 또 한 번 기름을 뚝뚝 떨어뜨리며 노릇노릇 익어갔다. ‘쯔란’이라는 중국 향신료가 들어간 양념을 곁들인 고기 맛은 수준급. 양고기 특유의 누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맥주를 부르는 맛이군.’ 테이블마다 중국산 칭다오(靑島) 맥주가 놓인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대학가 맛집계의 무서운 신성(新星)이다. 문을 연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서울대 앞 맛집에서 서울의 맛집으로 떠올랐다. 양꼬치로 유명한 동네보다 맛도 좋고 가격도 부담 없어 서울대생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란다.
“2008년 8월에 문을 열었는데, 한 20일 뒤쯤 서울대 커뮤니티에 저희 집이 맛집으로 소개가 됐대요. 그때부터 학생들도 몰려오고, 지방에서까지 손님들이 찾아와요.” 오순녀 사장(31·여)의 말이다.
오 사장은 맛의 비결을 묻자 “가족끼리 하니까’라고 답했다. 가게에는 오 사장의 어머니와 남편, 남동생까지 총출동됐다. 중국 동포인 오 사장네 가족은 중국에서도 음식점을 했고, 한국에서 지난 10년 동안에도 음식점 일을 했단다. 가게 이름인 ‘성민’은 오 사장의 세 살배기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
▽가격=대표 메뉴인 양꼬치 1인분이 7000원. 베이징식 탕수육 꿔바로우 등 중국 음식도 다양
▽위치=서울 관악구 봉천7동 1602-37.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 이화여대 후문 ‘라 본느 타르트’
강의도 하고, 요리칼럼도 쓰던 요리전문가 김희연 사장(43)이 ‘내 가게’ 욕심을 내고 차린 곳이다. 김 사장은 “초등학생이던 내 아이에게 먹일 파이를 만들자고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집 파이에는 유기농 재료만 사용된다. 설탕 대신 조청을 사용하고, 파이 위에 과일을 장식할 때도 응고제 대신 과일 잼을 끊여 붙이는 식이다. 재료 자체의 풍미와 쌉싸래한 과일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단것 싫어하는 남자 손님과 까다로운 엄마들까지 사로잡은 비결이다.
“시간대별로 다양한 손님이 찾아요. 오전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초등학교 엄마들이 들르고요, 점심시간 직후에는 주변 대학 교수님들이 오지요. 그 이후 시간에 대학생들이 찾습니다.” 연세대 후문 주택가에 테이블 하나 놓고 시작한 매장은 입소문을 타면서 3년 만에 이화여대 후문 대로변에 그럴듯한 규모로 커졌다.
비싼 재료를 사용하는 탓에 파이 하나 가격은 4000∼5000원대. 하지만 맛만큼은 최고. 설탕 덩어리 걱정을 접어둘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초콜릿 마카다미아 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달지 않은 초콜릿과 고소한 마카다미아의 조화가 감동적이었다. 파이와 함께 내주는 메밀차에도 정성이 묻어난다.
▽가격=딸기 타르트 5000원, 호두 타르트 3500원 등. 매일 20여 종의 파이가 나온다.
▽위치=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90-1. 이화여대 후문 맞은편 길가.
글=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아파트 한 동보다 대학생 1명이 나아” 배달음식점 캠퍼스 전쟁▼
대학 캠퍼스 주변마다 맛집이 즐비하고, 교내 식당도 잘 갖춰져 있지만 정작 학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곳은 배달음식점이다. 끼니를 챙기러 캠퍼스 밖으로 나가자니 시간이 아깝고, 교내 식당에서 해결하자니 맛이 아쉬운 학생들이 배달음식을 애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내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하는 학생일수록 배달음식점 의존도가 높다.
대학생들에게 학교 식당 이상으로 중요한 곳이 배달음식점이다 보니, 많은 대학이 총학생회 자료집이나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배달음식점 정보를 공유한다. 안기수 연세대 총학생회 재무국 차장은 “개인적으로도 이틀에 한 번꼴로 식사를 배달시킬 정도로 배달음식을 자주 먹는다”며 “아예 학생회에서 배달음식점 정보를 자료로 정리해 신입생에게 전해준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을 상대로 배달을 특화한 음식점은 대학 주변마다 많게는 100여 곳에 이른다. 치킨과 피자, 중식은 기본이고 냉면, 일식 돈가스, 보쌈, 삼계탕까지 배달된다. 고려대 앞에서 한식 배달전문점을 운영하는 원모 씨(40)는 “학생 1명을 잡는 게 아파트 1동을 잡는 것보다 낫다. 학생들은 불황에도 씀씀이를 줄이지 않고, 입소문을 타기도 쉽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배달음식점 수도 많고 메뉴도 다양하다 보니 음식점 간 경쟁도 치열하다. 게다가 학생들이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세세한 품평을 올리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서울대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내 ‘배달음식점 정보’ 게시판에는 각 음식점의 잘잘못이 세세하게 올라와 있다. ‘배달 올 때 카드 결제기도 안 가져왔다’ ‘중국 음식점에서 만두 서비스도 안 주더라’ ‘배달이 늦는다’ 등 지적 내용도 갖가지다. 서울대 앞에서 피자 전문점을 하는 권모 씨(33)는 “학생들은 배달 직원이 실수라도 하면 가차 없이 항의 전화를 하고 재료 원산지까지 꼼꼼하게 따진다”며 “일반 고객보다 학생 손님이 더 무섭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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