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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육정수]사형제와 여론

입력 | 2010-03-19 03:00:00


여중생 성폭행 살해사건을 계기로 사형집행을 재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부쩍 늘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성인 3049명 가운데 91%가 확정된 사형수들을 집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사형집행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흉악범들이 수용돼있는 경북 청송교도소에 사형집행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사형수들이 두려움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교정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 사형은 법무장관이 판결 확정 후 6개월 내에 집행명령을 내리고, 명령 후 5일 내에 집행하게 돼 있다. 그러나 1997년 12월말 23명이 무더기로 집행된 후 지난 12년여 동안 더는 집행되지 않았다. 부녀자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 초등생 혜진 예슬 양 살해범 정성현 등 57명이 사형 확정 후 아직도 교도소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형사소송법에 어긋난다. 더욱이 헌법재판소는 2년 전에 이어 지난달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재차 결정한 터다.

▷사형제 논란은 앞으로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형이 형벌로서 과연 효과가 있느냐의 형사 정책적 관점에서부터 오판 가능성, 생명존중과 인권적 시각, 종교적 이유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흉악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국민이 받는 충격과 법감정도 사형제 논의에서 무시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은 사형집행 중단 10년을 맞은 2007년 말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됐다. 그 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제로 논의의 중심이 옮겨가는 듯싶더니 이번에 다시 사형제 논란이 재연됐다.

▷사형이 가장 가혹한 형벌이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집행 순간에 고통이 끝나는 사형보다 두고두고 죄 값을 치르게 하는 종신형이 오히려 더 무거운 형벌이라는 관점도 있다. 과거 미국 샌프란시스코만(彎)의 앨커트래즈 섬에 있던 중범자 형무소에서는 흉악범일수록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시내와 금문교(Golden Gate)가 잘 보이는 쪽에 가둬 극심한 ‘무(無)자유의 고통’을 안겨줬다. 반인륜의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사형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진다. 여론만 바라보지 말고 형사정책 차원의 보다 신중한 사회적 논의가 요청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