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신영복 지음·돌베개동양 고전에서 찾아낸 ‘미래의 길’
《“우리가 ‘시경’의 국풍 부분을 읽는 이유는 시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동양 고전 중에서도 ‘시경’의 국풍(國風) 부분으로 강의를 시작한다. 백성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불려지고 전승된 노래를 모은 부분이다.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동의한 노래인 만큼 진정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경’을 읽으며 진정성과 사실성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여러분이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소위 상품미학은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여러분의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입니다. ‘시경’ 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저자는 이처럼 ‘시경’ ‘주역’ ‘논어’ ‘노자’ ‘순자’ 등을 읽으며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고전에 심취했던 저자의 이력처럼, 젊은 학생들이 공부가 아니라 교양을 쌓기 위해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논어’의 이 구절에서 저자는 부끄러움과 인간적 관계에 대한 공자의 통찰을 읽는다. 법과 형벌로 다스려지는 사회는 일본의 작가인 사카구치 안고가 ‘타락론’에서 제시한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 만연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타인의 부정과 추락에는 쾌감을 느낀다. 저자는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며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말한다. ‘집단적 타락 증후군’ 사회는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는 것이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따라서 유(有)가 이로운 것은 무(無)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다.”
‘노자’의 한 구절이다. 저자는 “이 장이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현상의 숨겨진 구조를 주목해야 한다는 메시지로서 읽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사물을 볼 때 모양, 색깔, 질감 등 유(有)가 아니라 그 사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노동과 같은 무(無)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외에도 각 사상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이나 이전과 이후 사상과의 연결점 등을 함께 설명하며 춘추전국시대 유학에서 송나라 때 신유학, 불교 사상까지 일별한다. 이를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동양 고전 독법은 바로 ‘관계론’이다.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간의 관계성 그 자체를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세계관을 말한다. 고립된 인간, 비인간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수천, 수백 년 전 동양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