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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출근해요] 보육교사들 버티다 못해 떠난다

입력 | 2010-03-19 03:00:00


하루 10시간 일하고 월급은 100만원… “선생님이라 불릴 뿐 대우는…”
“보육자 자주 바뀌면 아이들 정서 발달에 악영향”
민간시설선 2년도 안돼 이직…정부 지원 보조금 증액 시급
느슨한 자격기준도 문제…교사 넘쳐 처우개선 안돼

15개월 된 정아를 달래고 있는 인천의 한 어린이집 교사 강유진 씨(35·가명).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동료 교사가 그만둘 때마다 겪는 일이고, 그때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돌봐야 할 아이가 한 명 더 늘었지 않은가.

아이 가운데 정아는 강 씨를 낯설어하며 이유식도 거부하고 같이 낮잠을 자려고도 하지 않았다. 강 씨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다. 오전 8시에 출근해 보통 10∼11시간씩 근무하고 받는 월급이 92만 원에 불과하다. 강 씨는 “선생님이라 불리지만 우리가 선생님 대접을 받은 적이 있느냐”며 “베이비 시터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의무감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직장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보육교사들이 직면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적다. 내 아이를 책임지고 맡아주는 ‘그들이’ 왜 힘든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들이 행복하니까….

○ 표준보육비용 못 미치는 보육료

보건복지부의 2009년 표준보육비용과 보육료 비교 자료에 따르면, 보육교사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국공립 3년 2개월, 민간 시설 1년 9개월이다. 직장보육시설이 적은 탓에 아직까지는 민간 시설이 전체의 88.9%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빼고 보육교사들의 이직이 아주 잦다는 것이다. 보육교사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9.5시간. 그러나 월급은 일반 기업체와 비교할 때 무척 적다. 그나마 국공립 시설은 매달 평균 155만여 원을 받는다. 민간 시설의 경우 100만∼11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을 넘지만 임금 수준은 일반 기업체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충북 청주시 어린이집에 근무 중인 손수미 씨(32·가명)는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난 뒤 부엌에 서서 5분 만에 식사를 끝내는 일이 다반사”라며 “10분도 쉬지 못하며 아이를 돌봐도 한 달 월급은 100만 원 정도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숭실대 김현숙 교수팀에 의뢰해 ‘표준보육비용’을 산출했다. 인건비와 교재비 등 영유아를 보육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산정하는 것. 이 표준보육비용에 준해 보육료를 책정한다. 0∼2세의 보육료는 표준보육비용의 90% 수준이지만 3∼5세는 60∼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책정된 보육료를 정부와 부모가 나눠 낸다. 가령 0세의 경우 보육료 73만3000원 가운데 정부가 보조금으로 35만 원, 부모가 나머지 38만3000원을 부담한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18일 미취학 아동에 대해 보육비를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그대로 시행될 경우 보육교사의 인건비도 상향 조정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보육료가 낮다 보니 일선 어린이집에서는 줄이기 쉬운 교사 인건비부터 줄인다. 경력 10년 동안 5번이나 이직을 했다는 보육교사 정민주 씨(36·가명)는 “월급을 올리려면 더 많이 제시하는 곳으로 이직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 보조금 지원만 늘어도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공급 과잉…“자격증 관리 필요”

보육교사 자격증이 남발되면서 교사 수가 과잉인 것도 결과적으로 보육교사들의 복지와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는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005∼2009년 자격증 소지자는 48만1854명. 이 가운데 실제 일하는 비율은 34%뿐이다. 보육교사 10명 중 6명 이상이 놀고 있는 셈. 대체 인력이 많다 보니 저임금을 참을 수밖에 없다. 이민원 복지부 보육사업기획과장은 “보육교사가 넘치다 보니 인건비가 오르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민간·가정 어린이집은 학력이 높아도, 경력이 늘어도 똑같은 월급을 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보육교사가 이렇게 넘쳐나는 것은 보육교사 자격이 지나치게 느슨하기 때문이다. 보육교사 자격증은 1급부터 3급으로 나뉘어 있다. 1, 2급은 대졸 이상이지만 3급은 고졸 이상이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다. 2005년 ‘영유아보육법’ 개정 당시 보육교사 자격증 기준을 마련할 때 농촌과 어촌 등 열악한 지역에 보육교사가 부족해질까 봐 자격을 강화하지 않았다. 현재 복지부는 자격증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대안을 마련 중이다.

자격증 기준을 강화하기 전에 경력과 학력에 따른 호봉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기획조정연구실장은 “현재 국공립이나 직장보육시설에만 있는 호봉체계를 민간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근로시간을 줄이는 등 근로환경도 개선해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신의진 연세대 교수 지적
“보육자 자주 바뀌면 아이들 정서 발달에 악영향”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45·사진)의 상담실에 들어선 아이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아이는 인형만 쓰다듬는다. 말을 시켜 보지만 딴청만 피운다. 엄마가 인형을 빼앗고 대화를 요구하자 아이가 심하게 반항한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린다.

신 교수는 18일 “이런 사례는 아주 흔하다. 보육교사나 양육자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신 교수가 전해준 이 사례는 보육교사가 바뀌지 않는 게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신 교수는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해 그들이 한곳에서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아이를 돌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아이들의 정서가 불안해지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 ‘애착 형성’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애착은 아이와 양육자 간에 생기는 정신적 유대관계인데, 양육자가 자주 바뀌면 애착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다른 아이와 어울리지 못하고 분노를 드러내는 등 문제 행동도 보인다.

신 교수는 부모든 보육교사든 주 양육자가 3년 동안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 교수는 “미국에서는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기 전에 엄마들이 보육교사 월급을 먼저 확인하는데 보육교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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