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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리더 인터뷰]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입력 | 2010-03-19 11:15:34


21일 광화문에서 잠실 주경기장까지 42.195㎞의 서울 도심 코스에서는 2010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1회 동아마라톤대회가 열린다. 국내 최초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인증 '골드 라벨' 대회로 치러지는 이번 서울국제마라톤에는 2만3000여명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마라톤 초보자들이 출전할 수 있는 5㎞나 10㎞, 하프코스가 없이 풀코스만 치러지는 이번 대회에 이처럼 많은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참가한 것은 국내에서의 마라톤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는 대목.

그러나 국민적인 생활 체육으로 자리 잡은 마라톤을 제외하고 육상의 타 종목은 비인기 종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9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메달은커녕 한 종목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는 부진 속에 육상인들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난해 2월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에 취임한 뒤 1년을 보낸 오동진(62)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육상 발전 방안과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의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오동진 회장은 "삼성전자에서 기업인으로 보낸 35년 보다 육상연맹에서 보낸 1년이 더 힘들었다"는 말로 한국 육상이 현재 처한 어려움을 표현했다.

오 회장은 "육상은 기록이 중요한데 향상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을 쳐 왔으니 어떻게 인기 종목이 될 수 있었겠느냐"며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밑바닥까지 왔으니 이제는 전 육상인이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해 위로 치고 올라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의 쾌거로 인해 한국 빙상이 하루아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사실 민족의 스포츠로 우리 국민을 웃고 울게 한 것은 육상이었다.

1950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다. 이들은 이 대회에서 1~3위를 휩쓸었다.

이 뿐인가.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에서는 손기정 선생이,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에서는 황영조(현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두 차례나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을 제패하지 않았던가.

오 회장은 "옛날 선배들은 어려운 시절에도 강한 정신력으로 뛰고 달렸지만 요즘 지도자나 선수들은 의욕이나 정신력이 예전보다 덜 한 것 같다"며 "그래도 숨은 곳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지도자와 선수들을 발견한 게 지난 1년간의 작은 성과"라고 말했다.

육상의 뒷걸음질은 프로 스포츠와의 격차 때문이기도 하다. 예로써 특급 마라톤 선수라고 해도 1년에 국제대회에 기껏해야 2~3번 출전할 수 있다. 소속팀에서 월급을 받고 대회 출전 개런티를 받는다고 해도 큰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서 체격이나 체력 면에서 기본이 탄탄한 육상 선수들은 어릴 때 야구나 축구 등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된 종목으로 스카우트되는 게 다반사다.

오 회장은 "프로 선수들만큼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팀에 소속되면 일반 회사원처럼 걱정 없이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다. 하지만 거액을 버는 프로 선수들과의 격차가 큰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경기력 향상을 위한 포상금을 대폭 올렸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경기력 향상 포상금 제도를 보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선수에게는 10억원, 지도자에게는 5억원이 지급된다. 은메달은 선수 5억원, 지도자 2억5000만원, 동메달은 선수 2억원, 지도자 1억원, 그리고 8위 입상자까지 포상금이 지급된다.

아시아경기대회와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세계주니어대회, 세계청소년대회 등의 대회 때도 거액의 메달 포상금이 지급된다. 또한 트랙 및 필드와 마라톤으로 구분해 기록 경신 포상금 제도도 도입했다.

오 회장은 "육상만 잘해도 어지간한 프로 선수 못지않게 돈도 벌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북미대륙 총괄 사장을 지내는 등 기업인으로 '1등 주의'를 실천해 온 오 회장은 요즘 육상인들을 무섭게 몰아치고 있다. 그는 매주 한번 씩 태릉선수촌과 목포, 원주 등 각 종목 훈련장을 돌며 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수시로 강화위원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오 회장은 "단거리와 허들 선수가 주축이 된 트랙팀과 필드, 마라톤, 경보 팀 등으로 나누어 태릉선수촌과 목포, 부산, 원주, 수원 등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 중이고 수시로 해외 전지훈련도 시행하고 있다"며 "31년 묵은 남자 100m 기록부터 갈아 치우는 것을 필두로 차츰 기록 경신의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내년 8월에는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올림픽, 월드컵축구대회와 함께 세계 스포츠 빅 이벤트 중 하나로 꼽히는 세계육상대회를 안방에서 치르게 된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금 12, 은 10, 동메달 11개로 세계 4위에 올랐다.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한국은 4강 신화를 이뤘다.

안방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하지만 세계 기록과의 격차가 너무나 큰 100m 등의 단거리나 투포환 등 투척 종목 등에서 한국 육상이 갑자기 메달을 쏟아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스포츠팬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남의 잔치'로 끝날 것인가.

오 회장은 "냉정하게 우리 실력을 따져보면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은 물론 보통 8명이 나오는 결선 진출자도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장대높이뛰기, 멀리뛰기, 세단뛰기 등 도약 종목과 마라톤 등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경보, 투포환, 장대높이뛰기 등 5개 종목에 외국인 전문코치를 선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중이며 단거리에도 외국인 코치를 선발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2시간 10분대 안에 골인하는 우리나라 선수가 나와 앞으로의 희망을 보고 싶다"는 오 회장은 "육상연맹 회장에 재임하는 동안 꿈나무 육성 등을 통해 한국 육상의 오래 묵은 기록을 모조리 깨고 한국 육상이 세계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온몸을 던지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