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빠져야 하죠” 연극 ‘레인맨’에서 주인공 자폐증 환자 레이먼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박상원.
■ 연극 ‘레인맨’ 자폐증 열연 박상원
가장 먼저와 문열고 ‘나를 버리기’
기도하듯 레이먼 캐릭터 젖어들어
올해 비주얼 저널리즘 대학원 입학
제 자들이 10학번인데 나도 10학번
“아닌 게 아니라 이젠 뭐 어느 정도 …. 사람들이 평상시에도 ‘레이먼’이 나온다고 하니까, 다행인 거죠.”
오후 6시쯤 박상원(51)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분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2월 19일부터 3월 28일까지 이 극장에서 연극 ‘레인맨’의 레이먼 바비트 역으로 출연 중이다. 1989년도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맡았던(동생 찰리는 톰 크루즈였다) 자폐증 환자, 바로 그 역.
박상원은 공연이 있는 날이면 가장 먼저 극장에 나온다. 스태프보다 ‘출근’이 더 빠르다. 분장실 키를 직접 받아 문을 연 후에 의상을 입고, 레이먼에 젖어 들기를 기다린다. 레이먼의 호흡, 손짓과 발짓, 말투를 실제로 행하며 몇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가 있는 날에도 레이먼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지금까지 햄릿이든 뭐든 역을 맡으면 캐릭터를 ‘박상원화’해서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레이먼은 달라요. ‘박상원’을 버리고 레이먼으로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늘 ‘미소년’같던 그도 어느덧 선배, 동료보다는 후배들과 무대에 서는 일이 많은 나이가 됐다. 요즘 후배들을 보며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많죠. 하하! 너무 많지. ‘일찍 좀 다녀라’, ‘공연 전에 집중 좀 해라’, ‘분장실 분위기가 그래서 되겠니’하고 잔소리하느니 그냥 현장에서 몸소 보여주려고 합니다. 공연 전 정숙히 집중하면서, 기도 이상의 기도를 하는 모습이랄지, 분위기랄지. ‘아, 무대란 것이 그냥 막 왔다 갔다 하는 데가 아니고 뭔가가 있는 모양이구나’하고 스스로 느끼게 해 주는 거죠.”
마침 그는 인터뷰가 있기 전날, 상명대 대학원 비주얼 저널리즘 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제자들이 10학번인데, 나도 10학번이 됐다”며 웃었다.
레이먼은 극 중에서 “변하면 위험하다. 똑같은 게 좋은 거다”라는 대사를 수십 차례나 읊는다. 하지만 배우는 ‘변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쪽이 아닐까. “배우가 천의 얼굴을 가지면 좋겠지만 어차피 저는 그릇이 안 되니까, 한 가지 얼굴만이라도 된다면 다행인 것 같습니다. 꼭 바뀌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봐요. 생선가게에서 문어는 문어스럽고, 갈치는 갈치스러워야지요. 고등어가 새우 흉내 내는 건 좀 그렇잖아요? 무조건 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잘’ 변해야지요.”
‘변신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요즘 연예인들 틈에서 꿋꿋한 그의 ‘뚝심’은 신기하다 못해 아름다울 정도다.
박상원의 레인맨은 28일에 1차 막을 내리지만 곧 연장공연에 들어간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는 연장 때 ‘찰리, 레이먼을 함께 연기하면 좋겠다’ 싶은 후배들을 점 찍어놓고 요즘 틈만 나면 전화를 걸고 있다.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