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발 신드롬’… “내 딸은 내가 지킨다” 달라진 엄마들
데도 교문 앞은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로 북적였다.
교문 앞과 맞은편 도로에는 학부모들이 타고 온 차량이 학원버스와 함께 줄지어 서있었다. 남자 기자가 교문 앞에서 서성인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노란색 ‘배움터 지킴이’ 모자를 쓴 여성이 다가와 “뭐하는 분이냐”고 날카롭게 물었다. 교문 바로 뒤 건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구청에서 파견되어 활동하는 지킴이 할아버지 2명, 학부모 지킴이까지 학생들의 하굣길을 주시했지만 학부모의 불안감을 줄이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특히 최근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가 연일 보도되면서 딸을 둔 학부모들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내 딸이 범죄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직장을 그만둘 고민을 하는 여성도 있고, 서울 강남구나 양천구 목동 일대에는 24시간 자녀와 동행하는 ‘그림자’ 엄마도 부쩍 늘었다.
도처에 도사린 위험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보디가드’를 자청한 것.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끔찍한 범죄를 접하면서 딸 가진 부모들은 어느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까.
불안 속에서 필사적으로 딸을 지켜주고픈 부모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초등 4학년 딸을 둔 주부 김형선 씨(44·서울 송파구)는 학교, 학원, 동네에서 그림자 엄마로 통한다. 김 씨는 딸이 2학년일 때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딸의 등하굣길을 함께했다. 영어학원에 가는 날엔 학부모대기실에서 2시간 반을 기다린다. 수업이 끝나면 함께 차로 다른 학원으로 이동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김 씨를 두고 “○○(딸의 이름) 있는 곳에 ○○ 엄마 있다”고 말할 정도다. 김 씨는 “이전까지는 나도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면서 “용산 초등생 사건, 나영이 사건 등을 접하니 불안해서 하나뿐인 딸을 혼자 보낼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과거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던 범죄가 낯선 곳이 아닌 등하굣길, 집 근처에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은 더욱 크다. 24시간 딸과 함께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 김 씨는 “과잉보호라고 남들이 수군거리더라도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라면서 “처음에는 학교, 학원 앞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는 나에게 남편마저도 극성이라며 핀잔을 줬지만 요즘은 남편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거나 자녀가 다니던 학원을 모두 개인교습으로 바꾸는 등 쉽지 않은 결정을 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초등 1학년 딸을 둔 회사원 임모 씨(38·서울 서초구)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녀양육 문제에서 한 고비가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걱정이 더 생겼다”면서 “아이가 엄마 손이 제일 필요한 영유아 때도 직장을 그만둘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봐야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1만 원 상당의 요금을 별도로 내야 하는 자녀위치추적 서비스를 추가로 신청하는 학부모도 많다. 안심지역을 지정하면 자녀가 지역을 이탈하는 경우 지정된 보호자에게 최대 4명까지 문자가 간다. 윤 씨는 “요즘은 부부와 시부모까지 1시간에 한 번씩 아이의 위치를 알려주는 문자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만 믿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직장인 김모 씨(37·여)도 몇 달 전 초등 2학년인 딸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서비스를 신청해놓았다. 회사에 있을 때 1시간에 한 번씩 ‘현재 자녀가 ○○은행 200m 근방에 있습니다’ 등 예상 가능한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면서 안심한다. 얼마 전 아이가 학원에 있어야 할 시간에 ‘현재 자녀가 경기 양주시 출입국사무소 인근에 있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 씨는 당시를 “온갖 끔찍한 상상이 들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회상했다. 바로 아이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급해진 김 씨는 집, 남편,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혼미한 상태로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학원 원장은 “아이가 학원에 있는데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했다”면서 “아이의 휴대전화를 주운 행인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그대로 이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단 5분이었는데도 생사를 오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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