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노트 필통 어디에나 ‘서울대생 손민경’… 투지 불태웠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보단 피아노 치는 게 훨씬 재밌었어요. 건반 하나하나는 서로 다른 음을 내지만 악보를 통해서 아름다운 음악 한 곡이 완성된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가장 큰 난관은 부모님의 반대. 하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손 씨는 매일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의지를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묘안’을 떠올렸다.
손 씨가 ‘피아노 시위’를 시작한 지 사흘째. 부모님은 드디어 ‘교과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손 씨의 예고 진학을 허락했다. 손 씨는 “실기시험에서 떨어질까 불안했던 마음이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난 후엔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며 “허락 자체가 큰 응원이 된 셈”이라고 했다.
계원예고에 입학한 손 씨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단 1초라도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독하게 공부했다. 목표는 서울대. 경기 성남시 분당도서관에서 서울대 교수가 쓴 ‘음악학’이란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됐다. 단순히 연주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책의 내용처럼 심리학, 문학 등과 접목할 음악적 이론을 서울대에서 직접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 씨는 “수능, 내신, 실기를 함께 준비해야 하는 예고 특성상 일반계 고등학교보다 내신이나 수능 대비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이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좋은 성적을 받는 데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해진 등교 시간보다 1시간 앞선 오전 6시 반 학교 피아노 연습실에 도착해 실기연습을 했다. 이후 교실로 이동해 오전 자율학습을 했다. 정규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는 다시 실기연습에 주력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A4용지에 따로 정리한 뒤 화장실에 갈 때, 밥을 먹을 때,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 정리한 내용을 보며 복습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1학년 때 5등이던 반 석차는 점차 올라가 2학년부턴 전교 3등 안팎의 성적을 유지했다.
한 번의 실수는 상상 이상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원한 대학마다 불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내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하며 자책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내내 울기도 했다. 삶의 이유이자 목표였던 피아노가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너무 힘들어서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어요.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침대 머리맡에 앉으셨어요. 그러곤 한참 아무 말 없이 제 머리를 쓰다듬으셨죠. 순간 ‘내 꿈을 위해 모든 걸 양보하고 나만큼 고생하는 부모님은 얼마나 힘들까’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고 결심했죠.”
재도전을 결심하자 그동안의 원망이 반성으로 바뀌었다. ‘반성록’을 만들어 ‘자만심’ ‘연습 부족’ 등 스스로 분석한 패인을 적었다.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책, 필통, 노트, 책상 앞 등 공부를 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서울대학생! 손민경!’이라고 적어놓았다.
공부 방법도 전략적으로 바꿨다. 오전 5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그날 공부계획을 학습계획표에 기록했다. 분 단위로 하루를 나누고 ‘언어영역 기출문제 2회, 2시간 안에 풀기’ ‘외국어영역 단어 50개, 1시간 안에 외우기’처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스톱워치를 사용해 자신이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1시간임을 파악한 뒤 최대한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1시간에 1과목씩 공부했다. 오후 4∼5시부턴 실패의 주된 원인이었던 실기에 대비했다. 실제 시험을 치른단 생각과 각오로 연습했다. 주말엔 실기연습에 하루를 쏟았다.
또 한 번의 수능과 대학별 실기시험을 실수 없이 마친 손 씨는 올해 1월,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 작곡과(이론전공)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손 씨의 최종 목표는 음악교사로 교단에 서서 자신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느냐, 재도약의 기회가 되느냐는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앞으로 펼쳐질 대학생활이 설레고 한편으론 걱정도 되지만 문제없어요. 이젠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으니까요(웃음).”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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