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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육아교실의 할아버지

입력 | 2010-03-22 22:24:00


나이가 든 탓인지 요즘은 고부 관계에 관한 우스갯소리를 들어도 며느리보다는 시어머니 쪽 이야기에 훨씬 공감이 간다.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의 남편을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등 ‘3대 착각녀’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썰렁한 유머 중에서 웃고 넘길 수 없는 것도 있다. “의사 며느리, 박사 며느리 두었다”고 자랑하면서 손자 손녀 업고 다니는 강남 시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자녀 양육을 부모에게 맡기려는 맞벌이 부부와 손자 양육을 거부하려는 부모 세대의 밀고 당기기가 생각보단 심각하다. 며느리나 딸을 질겁하게 만들어 자녀를 데려가게 하는 비법이 할머니들 사이에 오간다. 밥 씹어서 손자에게 먹이기, 빨랫비누로 머리 감기기, 사투리로 한글 가르치기…. 자식이 결혼해 서울에 자리 잡을 즈음에 서울 집을 팔고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 노부부도 보았다. 반면에 신혼부부들은 양육 도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신혼집을 부모 집 근처에 얻으려 한다.

▷어린아이 돌보는 일에도 체력과 신경 소모가 심하다. ‘애 보느니 파밭 매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손자 손녀를 키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빨리 늙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손자 손녀를 기르는 할머니는 아이들을 업고 안느라 척추가 휘어지며 체형이 무너지기 쉽다. 요즘 어르신들도 삶의 질을 추구하기 때문에 노화를 재촉하는 손자 돌보기가 반갑지 않다. 한 할머니는 “손자들이 오면 너무 예쁘다. 손자들이 가면 더 예쁘다”고 말한다. 잠깐 놀러오는 것은 환영이지만 온종일 치다꺼리를 하기는 싫다는 의미다.

▷서울 구로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예비 할아버지 할머니 교실’에 할아버지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지난해 ‘예비 할머니 교실’을 개최했는데 할아버지에게도 기회를 달라는 요구가 많아 대상을 확대했다고 한다. 할머니 혼자 아기를 돌보기가 힘에 부치다 보니 할아버지가 거들어 주려는 것이다. 아기 인형을 안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진지하다. 어르신들은 기저귀 가는 법, 분유 타는 법, 젖병 삶는 법을 배운다.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어 늙은 부모에게 손 내밀 수밖에 없는 저출산 고령화사회의 새로운 풍속도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