辯 “돈 챙긴뒤 곧바로 배웅… 시간상 불가능”■ ‘한명숙 재판’ 총리공관 초유의 현장검증韓 “저 서랍장 쓴적 없어”…재연 시간차 놓고도 신경전
돈봉투 진실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 달러 수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22일 사상 처음으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1층 오찬장(지금은 집무실)에서 법원의 현장 검증이 실시됐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돈봉투를 놓고 나온 상황을 설명하는 가운데 한 전 총리(오른쪽)가 팔짱을 낀 채 이를 지켜보고 있다.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재판장인 김형두 부장판사. 당시 상황을 재연한 결과 곽 전 사장이 자신이 앉았던 의자에 돈봉투를 놓고 나오는 데 15초가 걸렸다. 김재명 기자
2006년 12월 20일 오찬회동이 있었던 오찬장은 지금은 집무실로 바뀌었지만, 검찰의 요청에 따라 오찬 당시와 똑같은 모습으로 가구가 배치됐다. 한가운데 원형 식탁 한 개와 의자 4개가 빙 둘러 놓였고 오찬장 입구 맞은편 벽 쪽에 서랍장이 있었다.
현장검증의 쟁점은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하는 게 가능했는지에 있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곽 전 사장의 설명에 따라 돈 봉투를 꺼내 의자에 놓는 동작과 이를 한 전 총리가 집어 들고 서랍장에 넣는 것을 가정해 현관까지 나가는 동작을 초 단위로 재면서 여러 차례 재연했다.
곽 전 사장은 “일어서면서 숙인 채로 봉투를 하나씩 꺼내 테이블 방향으로 (두 개의 봉투가) 겹치지 않게 뒀다”며 “(참석자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섰고) 총리님이 좀 늦게 나왔다”고 말했다. 이 설명에 따라 곽 전 사장의 대역이 각각 2만, 3만 달러가 든 봉투를 하나씩 꺼내 나란히 의자에 놓고 오찬장 문 앞까지 나오는 데 15초가 걸렸다.
이어 검찰 측은 한 전 총리가 의자 위의 돈봉투를 서랍장에 챙겨 넣었으리라고 가정한 상황을 재연했다. 한 전 총리 대역이 봉투를 챙겨 테이블 뒤에 있는 서랍장 왼쪽 맨 위 서랍에 봉투를 넣고 곽 전 사장을 뒤따라 현관까지 나가는 데 34초가 걸렸다. 이를 지켜보던 한 전 총리는 옆 사람에게 “나는 저 서랍 쓴 적도 없는데…”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상황을 변호인 측이 재연했을 때에는 45초가 걸리는 등 시간차가 났다. 서랍장을 여닫는 소리가 오찬장 밖에서도 들리는지를 확인할 때에도 검찰 측이 재연할 때와 변호인 측이 재연할 때 소리 크기가 서로 달라 이를 지켜보던 재판장과 한 전 총리는 웃음을 짓기도 했다.
현장검증에는 당시 총리공관 관리팀장과 총리 수행비서, 경호팀장 등 증인 4명이 참석해 오찬이 끝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오찬장 문을 열고 나오자 수행비서 강모 씨가 복도의 소파에서 오찬장 앞으로 다가가는 장면을 재연했다.
한 전 총리는 현장검증이 진행되는 내내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총리 공관에 도착하자마자 “아, 오래간만에 온다”고 말했고, 오찬장 안에서는 팔짱을 낀 채 재연 모습을 지켜보거나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눈이 많이 내리네요. 좋은 날이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장검증이 끝난 뒤 검찰과 변호인 측은 재연 결과를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 측은 “오찬장 안에 서랍장과 드레스룸이 있어 돈봉투를 처리할 공간이 충분했다”고 주장했고, 변호인 측은 “한 전 총리가 돈봉투 2개를 챙겨 다시 자기 자리 쪽으로 와서 서랍장에 넣어놓고 참석자들을 배웅하기 위해 현관까지 나가기에는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동영상 = 사상 첫 총리공관 현장검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