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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설득 공들이고 막힐때면 한걸음 양보 “이것이 정치다”

입력 | 2010-03-23 03:00:00

■ 오바마 “한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미국인의 승리”




《미국에서 전 국민을 수혜 대상으로 삼는 건강보험개혁법안이 근 100년 만에 하원에서 가결된 직후였다. 21일 오후 11시 47분(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 들어섰다.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여러 주를 오갔고 의회로, 대학으로 종횡무진 발품을 팔며 보냈던 지난 일주일의 피로 탓인지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역사적 투표를 승리로 이끈 그의 입가에는 시종 미소가 감돌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100년에 가까운 좌절과 수십 년간의 노력, 그리고 1년 동안의 지속적인 노력과 토론 끝에 우리는 마침내 승리를 선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의 승리는 어느 한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미국인의 승리”라며 “급진적인 개혁이 아니라 중대한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스킨십 정치
의원들 수시로 독대-만찬
반대자를 전용기 옆자리에

타협의 정치
중도 반대파 끌어들이려
진보 상징 ‘공공보험’ 포기

대중의 정치
위기때 ‘타운홀 미팅’ 자청
국민에 호소하며 동력 얻어

○ 소통의 승리… 반대파와 타협도


오바마 대통령은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민건강보험을 약속한 이래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지미 카터는 물론이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전임 대통령의 실패 사례를 꼼꼼히 벤치마킹했다. 특히 1993년 당시 상원 56석과 하원 258석이라는 절대다수를 가지고도 첫 국정개혁 과제인 건보개혁법안의 의회 부결을 경험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실패 원인을 의회와의 관계 정립 실패로 판단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의회 설득 작업에 주력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달리 법안 발의를 의회에 맡겼고 상하원에서 벌어지는 법안 마련을 위한 토론 과정을 경청했다. 상원의원 경력 36년의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을 ‘비공식 의회대사’로 활용해 의원들의 ‘민심’을 듣는 창구로 활용했다. 하원의원 출신인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 역시 하원 구내식당과 헬스클럽을 수시로 드나들며 의원들과의 접촉면을 넓혔다.

대통령 자신도 필요하면 의원들과 독대했다. 건보개혁법안의 의회 통과를 이끌어 낸 주역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든 것은 물론이고 건보 개혁 관련 상임위원회 중 하나인 상원 재무위원회의 맥스 보커스 의원 역시 대통령과의 독대는 물론이고 가족 만찬에도 초대됐다. 마지막까지 건보개혁법안에 반대했던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의 대통령 옆자리도 내줬다.

하지만 그 과정이 모두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건보 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작은 부분은 버렸고, 반대파들과 타협하는 실용주의적인 태도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내 진보주의자들이 절대불가를 외치던 퍼블릭 옵션(정부 운영 공공보험)을 빼는 조건으로 온건·중도파들의 참여를 설득했다. 또 법안 내용 중에 낙태를 위한 정부보조금이 포함돼서는 안 된다는 일부 반대파는 하원에서 건보개혁법안이 통과되는 즉시 낙태 시술에 연방기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하겠다는 약속으로 불만을 무마했다.

○ 고비마다 빛난 승부사적 기질

오바마 대통령은 설득과 홍보가 필요할 때는 거침없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지난해 8월 의원들이 지역에서 시작한 건보 개혁 관련 설명회가 지역민들의 반대에 부닥쳐 어려움을 겪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유세를 연상케 하는 ‘타운홀 미팅’을 열고 대중에게 직접 호소했다.

올 1월 19일 에드워드 케네디 전 의원의 유고로 치러진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선거가 공화당의 승리로 돌아간 직후에는 대통령이 직접 발의한 건강보험 개혁안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상하 양원의 의견 차를 접목시킬 수 있는 안”이라며 “공화당도 건설적인 제안을 내놓고 미국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진정한 토론을 하자”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2월 25일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서 열린 이른바 ‘건보 개혁 정상회의’가 건보 개혁의 운명을 좌우한 분수령이었다고 분석했다. 민주-공화 양당의 상하 양원 지도부를 모두 초청한 가운데 열린 이날 ‘끝장토론’은 추동력을 상실한 건보 개혁 논의를 다시 한 번 전 국민의 관심사로 만든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논란이 있었지만 건보개혁법안 처리를 독려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호주, 괌 순방 계획을 두 차례나 연기하는 초강수를 둔 것도 득이 됐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