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개봉 ‘그린존’
사진 제공 영화인
‘그린존’(25일 개봉)을 보고 나서 대뜸 떠오른 것은 반담과 시걸의 얼굴이었다. 어떤 영화에서건 맡은 배역의 이름과 특징을 관객의 뇌리에서 지운 뒤 오직 ‘반담’과 ‘시걸’만을 줄기차게 보여줬던 두 배우.
발차기뿐인 반담과 손동작뿐인 시걸을 할리우드의 총아 데이먼에 빗대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린존’은 흐지부지 사라져간 두 액션배우의 전철을 따르려 하는 데이먼의 위험 징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배경은 2003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수색부대 지휘관인 로이 밀러 준위(데이먼)는 거짓 정보 탓에 작전이 거듭 실패하자 군 상부를 의심한다. 중앙정보국(CIA) 요원 마틴 브라운과 손잡고 진실을 찾아 헤매던 밀러는 후세인파 잔존 세력과의 위험한 거래에 뛰어든다.
이 영화는 적당히 엄숙하고 적당히 스릴 있다. 데이먼이 주연한 블록버스터 첩보영화 ‘제이슨 본’ 시리즈의 변주임을 감추려는 기색이 없다. 군복을 입고 철모를 썼지만 적을 제압하는 밀러의 몸놀림은 영락없이 제이슨 본의 그것이다. 시종일관 무표정. 거친 숨 한번 뱉지 않고 잔인하게 적을 몰아치던 전성기의 시걸과도 닮았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을 포함해서 편집, 미술, 음악도 모두 ‘제이슨 본 팀’ 멤버가 맡았다. 장면을 빠르게 전환하는 편집 리듬까지 비슷하니, 시간이 흐를수록 밀러 준위는 희미해지고 제이슨 본이 보인다. 음모론의 고리를 파헤치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설정도 대동소이하다.
데이먼은 27세 때 친구 벤 애플렉과 함께 쓴 ‘굿 윌 헌팅’ 각본으로 천재 소리를 들으며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하지만 그 뒤 10여 년간 데이먼이 이룬 성취는 액션히어로 제이슨 본을 빼면 달리 두드러진 것이 없었다.
영화 제목 ‘그린존(green zone)’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바그다드 궁전을 개조해 만든 미군의 특별 경계구역 이름이다. 수영장, 레스토랑, 나이트클럽이 들어선 전장 속 별천지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담장 밖 포화에 아랑곳없이 흥청망청했다.
2000년대 데이먼의 경력에서 본 시리즈를 빼고 남는 것은 ‘오션스 시리즈’뿐이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등 잘나가는 선배들과 어울리며 편안히 나이든 데이먼의 얼굴에는 이제 ‘굿 윌 헌팅’ 때의 총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그린존’이 본 시리즈만큼 재미있기라도 했다면 굳이 반담과 시걸이 떠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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