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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하준우]서울과 밴쿠버 사이, 무색한 22년

입력 | 2010-03-24 03:00:00


1988년 10월 15일 서울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개막식.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관중 7만여 명이 65개국 선수 4361명을 환영했다. 얼마 전까지 서울패럴림픽조직위는 고민에 빠졌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주최 도시가 장애인올림픽까지 열게 됐으나 입장권 판매율이 저조했다. 서울올림픽과는 딴판이었다. 정부와 기업이 나섰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3김(金) 씨도 입장권 수백 장씩을 샀다.

선수 늘었어도 차별-무관심 여전

이 덕분에 개막식은 만원이었지만 경기장 관중석은 빈 자리가 훨씬 많았다. 소리가 나는 공을 굴려 상대편 골대에 집어넣는 ‘골볼’ 경기는 절대 정숙이 요구되니까 관중이 없어야 한다는 이상한 소문이 나는 바람에 한국팀은 외롭게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상대방 덴마크 팀은 응원단의 격려를 받으며 경기를 했다. 경기장 밖은 축제 분위기였다. 서울시청 앞 시청광장엔 꽃으로 장식된 탑이 세워졌다. 장애인에겐 고궁과 유적지 무료입장 혜택이 주어졌다. 서울패럴림픽은 이처럼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서울패럴림픽에서 황연대극복상을 제정한 황연대 당시 정립회관 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장애인올림픽이 시작도 되기 전에 올림픽 이후를 걱정한다면 신경과민이라 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 문제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룰 정도입니다”라고 말했다.

불행하게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장애인에겐 이미 소외감이 만연한 상태였다. 당시 정부는 올림픽 대표선수에게 비장애인의 경우 9000원, 장애인의 경우 7000원을 하루 식비로 지급했다. 거친 항의를 받고 식비를 뒤늦게 인상했다. 장애인육상팀은 숙소인 정립회관 운동장이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좁아 경기 수원 성남 안양시의 공설운동장을 전전해야 했다. 20여 년이 흐른 뒤 밴쿠버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휠체어컬링팀은 전용 컬링장을 빌리지 못해 수영장에 얼음을 얼려 훈련을 했다. 서울패럴림픽 때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패럴림픽 이후 장애인 체육은 많이 발전했다. 17년이 지난 2005년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설립됐으며 지난해 장애인종합체육훈련원도 생겼다. 장애인선수 등록인원은 2007년 2576명에서 올해 7285명으로 늘었다. 이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중시하는 장애인이 스스로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지만 장애인을 위한 체육시설은 여전히 미흡한 게 현실이다.

한국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다. 2001년 이후 인권위원회에서 접수한 차별 진정사건 가운데 장애의 비중은 27.7%로 다른 사유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통계청이 발간한 ‘2008년 한국의 사회지표’에선 자신이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89%였지만 사회가 장애인을 차별한다는 응답은 72%였다. 심한 부조화다. 한국인 20명 가운데 1명은 장애인이고, 장애인 10명 중 9명은 후천성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결국 자신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지도 모를 사회다.

마음 못 읽는 ‘인간성 장애’ 아닌가

밴쿠버패럴림픽 한국팀의 투혼은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선전에만 눈을 돌리고 그 과정과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4년 뒤 장애인 선수들은 여전히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점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비장애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서울패럴림픽 때 인터뷰 기사 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장애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볼 때 장애인은 일어설 수 없게 됩니다. 이 순간부터 비장애인도 인간성에 있어 장애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당시 서울패럴림픽 선수촌장 문병기 씨)

하준우 편집국 부국장 ha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