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주교회의가 최근 4대강 사업에 대해 “이 나라 전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의견서를 발표했다. 주교회의는 한국 가톨릭의 최고의사결정기구여서 광우병 촛불시위에도 참여했던 정의구현사제단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 야당은 4대강 사업에 대해 ‘대운하를 위한 전 단계 공사’라는 공세를 폈으나 주교회의는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라고 본 사업 자체를 문제 삼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자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 의견을 경청해 정부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완할 수도 있다. 주교회의의 의견서는 생명 존중과 환경 보호에 대한 종교적 신념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환경운동에 종교 또는 도덕적 우월주의가 결합하면 경제학적 분석이나 과학적 처방을 내리기 힘들어진다. 그런 사례를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나 경부고속철도 건설과정에서 경험했다. 위도 방폐장 반대 투쟁이 치열할 때 부안성당 문규현 신부는 그 핵심에 있었다. 천성산에서는 지율 스님이 꼬리치레도롱뇽을 보호하겠다며 단식농성을 벌여 철도 공사를 지연시켰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CO2 배출이 적은 원자력발전과 철도는 친환경적이다.
주교회의가 정부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낸 만큼 그 의견에 대한 세속의 비판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주교회의는 1960, 70년대 인구팽창기의 낙태 조장 정책처럼 ‘생명을 발전의 수단으로 삼고 파괴하는 행위가 자연환경에도 행해지고 있다’며 4대강 사업을 비판했다.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교리에 따라 낙태, 동성(同性)결혼,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의 이용과 개발은 낙태 문제와 동일선상에 있다고 하기 어렵다. 정부의 4대강 개발 논리는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 피해를 막으면서 수질 개선과 수량 확보를 하고 국토 활용도를 높이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갈수기에 검고 악취를 풍기는 물이 흐르는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수질 개선은 사람과 어류의 생명과 직결된 사업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주교회의의 의견서는 ‘환경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창조주의 놀라운 작품’이라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진리안의 사랑 48항’을 인용했다. 미국에서는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론 교리가 교육이나 행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도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선언한 세속주의(secularism) 국가이다.
주교회의의 의견서가 나온 뒤 가톨릭 ‘평신도 모임’ 명의의 성명은 ‘좌익 이데올로기가 교회에 파고들어 성직자들을 좌경화시키고 있다’고 개탄했다. 좌파 정당이 일찍부터 발달한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좌파 또는 좌경이라는 말은 ‘친북’과 연결돼 있다. 성직자들에게 이런 말을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성직자와 김일성 사이비교는 공존할 수 없다. 캐나다 리자이나대 오강남 교수(비교종교학과)는 “성직자들에게 좌파라는 딱지붙이기는 ‘정치적으로 부당한(politically incorrect)’ 표현”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어떤 스님을 향해 “부자 절의 좌파 중”이라고 했다는 주장을 둘러싸고서도 공방이 뜨겁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조계종이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강남 봉은사를 직할 사찰로 하는 것과 ‘좌파 중’ 논란은 별개인 것 같아 보인다.
시대 따라 현실참여 달라져야
민주화 이후 종교계에서도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현실참여의 방안에 대해 진지한 모색을 하고 있다. 현실참여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는 용기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김 추기경이라면 어떤 길을 걸었을지 생각해보면 사회운동의 좌표를 잡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