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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있니, 내 아들아…” 바다보며 절규

입력 | 2010-03-28 21:32:19

■ 사고현장 간 실종자 가족들
“구조작업 너무 더뎌” 불만
“실종자-가족 통화” 해프닝도




28일 오후 3시경 인천 옹진군 백령도. 며칠동안 매섭게 몰아치던 파도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우중충하던 하늘도 맑게 갰다. 그러나 해군장병 실종자 46명을 사흘째 품고 있는 바다는 가족들의 절규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자는 해군이 지원한 배를 타고 사고 현장이 있는 백령도 남서쪽 약 2㎞ 해상까지 나가봤다. 배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먼 바다로 나갈수록 파도가 높아졌기 때문. 파도는 눈짐작으로도 2m는 족히 넘어 보였다. 파도가 너울거릴 때마다 기자가 탄 배도 심하게 흔들렸다.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갑판에는 배에 부딪힌 파도가 부서지면서 심하게 물을 튀겼다.
뱃머리에 서서 백령면 장촌포구를 바라봤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이지만 바다에서 바라보니 까마득했다. 헤엄쳐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거리였다. 사건 현장 인근에 도착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실종자 대부분이 타고 있던 함미(艦尾) 부분이 침몰해있는 곳도 오리무중이었다. 해군 관계자는 "조류가 초속 3m 이상으로 너무 빨라 수색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대답했다.
27일 밤 평택항에서 출발해 28일 오전 8시경 사고 해역 인근에 도착한 실종자 가족들은 메아리 없는 바다 앞에서 오열했다. 구조 작업에 나섰던 해경 관계자는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아들아 내 아들아 어디 있니…'라고 외치며 오열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지켜본 가족들은 "아직도 승조원들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왔는데 구조 작업이 너무 더뎌 실망했다"고 입을 모았다. 평택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실종자 가족 11명은 고속정(참수리정 339호)에 옮겨 타고 오후 4시경까지 사고 해역 인근에서 수색 작업을 지켜보다 아예 백령도로 입항했다. 박형준 씨(38·실종자 문규석 중사 사촌형)는 "평택에 있는 가족들에게 시체라도 건지겠다고 하고 왔는데 해군도 함미가 있는 곳을 모른다는 말만 반복해 가족 전체가 분노하고 있다"며 "아직도 배 밑에서 살려달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실종자를 모두 찾을 때까지 백령도에 남겠다"고 말했다.
해군은 이날 실종자 수색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총동원했다. 사고현장 주변에는 상륙함 1척, 고속정 5척, 초계함 4척, 호위함 4척뿐만 아니라 구축함도 1척 배치됐다. 오후 부터는 경남 진해 해군기지에서 파견한 3000t급 구조함 광양함도 힘을 보탰다. 잠수부 16명을 태운 광양함은 즉시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을 태운 고무보트 20여 척도 해안, 절벽 등을 누볐다. 그러나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빠른 조류 탓에 쉽사리 물 속을 누비지 못했다.
이날 백령도를 찾은 가족들은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실종자 중 1명이 휴대전화로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는 얘기가 돌았던 것.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가족들은 한 때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결국 근거없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SK텔레콤과 KT에 따르면 가라앉은 배 속에서도 통화가 되려면 △배 안에 공기가 존재하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 공간 안에서 중계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수심이 깊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KT관계자는 "현장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통화 가능 여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백령도=유성열기자 ryu@donga.com
백령도=박승헌기자 hparks@donga.com